설교 강의

<2023.10.8 주일오전예배설교> 성령을 따라 행하라 (갈5:19-26)

박선준목사 2023. 10. 14. 14:14

성령을 따라 행하라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내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미워하고 싶으면 미워하고, 술 마시고 싶으면 술 마시고, 음욕이 생기면 음행을 하고, 거짓말하고 싶으면 거짓말하고, 우상을 숭배하고 싶으면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누가 뭐라 할 사람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주인은 나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미워하고 싶은 사람 미워한다는데, 내가 술 마시고 기분 좀 내 보겠다는데, 내 몸 가지고 음란을 즐겨보겠다는데, 내가 의지하고 싶은 우상을 숭배하겠다는데, 내가 거짓말을 하든 말든 무슨 상관야 인것이죠. 이렇게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내 인생의 주인 노릇을 내가 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죠. 내 마음대로 산다는 것을 성경적인 말로 바꾸어서 말하면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산다 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내 마음대로 살면 좋을 것 같죠. 그런데 결코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보면 너무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내 인생의 주인을 나로 여기며 사는 사람들의 세상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합니다. 단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습니다. 시기, 질투, 미움, 다툼, 음란, 간음, 술취함, 방탕, 살인, 강간, 절도, 사기, 온갖 탐욕, 등등의 수많은 죄악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마음대로 사는데 왜 세상은 죄로 가득한 세상이 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모든 인간의 마음이 죄로 타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죄로 타락한 사람들은 사회를 이루어 같이 사는 것 같지만, 서로 사랑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자기만을 위할 뿐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고독합니다. 결국 나 혼자서 죽음을 맞이하고 쓸쓸이 이 세상을 떠나가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정말 불행인 것은 그렇게 고독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나가면 죄의 심판으로 영원한 형벌을 받아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19절부터 읽어 보겠습니다.

5: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5: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5: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육체의 일이란 육체의 욕심을 따르는 일 즉 자기 욕심을 따르는 일을 말합니다. 그 육체의 일은 명백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먼저 음란하다는 것입니다.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이것은 다 음란이죠. 성관계는 원래 아름다운 사랑의 표현으로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부부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부부는 하나님이 한 몸되게 하신 관계로 끊임없이 서로를 위할 뿐입니다. 손이 몸을 위하고 발이 몸을 위하고 눈이 몸을 위하는 것처럼 부부는 한 몸으로 서로를 위할 뿐입니다.

아내는 남편을 위하고 남편은 아내를 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한 몸입니다. 부부간에 성관계도 단순히 자기의 성욕을 채우려는 성관계가 아닙니다. 서로를 위한 섬김이며 헌신이고 사랑입니다. 그런 성은 아름다운 것이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부부의 울타리를 벗어난 성관계는 음행으로 죄이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습니다. 그것은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자신의 성욕을 채우려는 더러운 욕심에서 나온 성행위입니다. 그런데 이런 음욕이 타락한 모든 인간의 본성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로 타락하면서 성욕도 타락해 버린 것이죠. 이 음욕은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육체의 명백한 일에 우상숭배와 주술이 있습니다. 우상숭배와 주술이 왜 육체의 욕심을 따르는 일이냐면 그것도 오로지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상이나 주술은 그저 자기의 욕심을 이루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겉으로는 보이는 우상을 높이고 숭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자기를 위한 것이고 자기가 신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단지 여러분의 성공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고 그것은 육체의 일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육체의 일은 사랑이 없음입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지 않고 남의 유익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육체의 욕심은 오로지 자기를 위할 뿐입니다. 그래서 육체의 욕심을 따르면 절대로 하나 됨을 이룰 수 없습니다. 나에게 해를 끼친 자는 원수 맺고 용서하지 않으며, 나에게 이득이 없으면 분쟁을 일으키고, 당을 짓고, 분열하며, 나보다 더 잘하는 자가 보이면 시기, 질투하며, 자기 쾌락을 위해 술취함, 방탕을 일삼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육체의 욕심을 따르는 자들은 21절 끝에 보시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것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예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죠.

현재 인간의 마음은 죄로 타락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살면 죄의 길을 갈 수밖에 없고 결국 죄의 심판을 받아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살면 안됩니다. 그러나 내 속에는 나 밖에 없잖아요. 누가 일마다 때마다 너 그렇게 살면 안돼, 이렇게 살아야지하고 안내해줄 수 있나요? 다 각자 자기 삶 살기 바쁘잖아요. 자식들도 어렸을 때는 부모가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하고 조언하지만 조금만 크면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을 믿으면 그때부터는 혼자가 아닙니다. 내 속에 다른 분이 들어오십니다. 그 분이 누구냐면 누굴까요? 예 성령님이십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씻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나의 구주이심을 믿을 때 성령님이 내 안에 들어와 내주하십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면 그때부터는 내 마음대로 살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주인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나의 주인은 나였는데, 예수님을 믿고 나면 나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진리를 알게 해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계속해서 우리가 내 마음대로 살지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릅니다. 이 둘이 우리 안에서 충돌이 일어납니다.

이런 충돌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냥 육체의 욕심을 따라 오직 자기를 위하여 살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술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쾌락을 즐기고 싶으면 즐기고, 거짓말하고 들키지 않으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와 예배드리고 헌신하고 봉사하고 이런 것들은 불필요한 것에 불과한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나서 성령께서 내주하시면서 육체의 소욕에 브레이크를 거십니다. 술마시면 안되지, 음란을 버리고 성결해야지, 정직해야지, 하나님께 나가 예배드려야지, 헌신하고 봉사해야지 등등 그러면서 우리 안에 충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충돌이죠. 이때 우리 자아는 무엇을 선택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전에처럼 그냥 육체의 소욕을 따라갈지 아니면 이제는 성령을 따라갈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따르지 않고 육체의 소욕을 따라가면 전에처럼 죄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기 전에처럼 한정없이 계속 죄의 길로 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 순간 주인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내가 주인이라서 내가 육체의 욕심을 따라가면 아무도 방해할 것이 없었는데, 이제는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 순간 나는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나의 주인은 하나님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24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정욕과 탐심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것은 죽었다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우리도 함께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주인이었던 나는 죽었습니다. 이제 나의 주인은 예수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을 따르지 않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가면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징계하십니다.

다윗이 우리야 장군의 아내 밧세바를 간통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처음에 다윗은 이 사실을 덮고 지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다윗은 하나님과의 모든 소통이 끊어지고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은혜를 상실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로 다윗이 당한 고통을 시편에서 곳곳마다 표현해 놓았는데 그 중에 하나로 시편38:3,4을 보면

38:3 주의 진노로 말미암아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말미암아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38:4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내가 감당할 수 없나이다

이런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면서 결국 회개하고 죄의 길에서 돌이키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의 주인은 이제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성령과 육체의 소욕이 충돌할 때 성령을 따라가려고 하면 육체의 소욕이 가만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 불평을 늘어놓고 나 죽네, 망하겠네 하며 소리지르며 어떻게 서든지 성령을 따라가지 못하게 방해를 할 것입니다.

가령 여러분이 새벽기도회를 가려고 작정을 하고 새벽에 일어나려고 하면 별에 별 생각이 다 듭니다. 잠이 부족하면 뇌에 문제가 생긴데, 새벽에 가다가 괴한을 만나면 어떻게, 이불을 밖으로 나가면 죽을 것 같습니다. 수입에서 십일조를 드릴 때도, 이거 내면 망할 거야, 굶어 죽을 지도 몰라, 전도하러 나가려면 전도하면 교회 이미지만 나빠져, 사람들이 싫어할거야, 관계전도로 해야지 등등 수많은 이유를 들며 성령의 인도를 따르지 못하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육신의 소욕이 끄는 대로 끌려다닐 수 밖에 없었어요. 죄의 종으로 산 것이죠. 그러나 성령께서 들어오시고 난 뒤에는 육신의 소욕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닙니다.

단 여러분이 성령을 따르기로 결정을 해야 합니다.

성령은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지신 분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따르기로 결단하면 성령께서 여러분 속에 있는 육체의 소욕을 넉넉히 물리칠 수 있게 하십니다. 1:20에 보시면 성령의 권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말씀합니다.

1: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1: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1: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고 하늘로 승천시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히시고 모든 만물이 예수님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신 분이 바로 성령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은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지고 계시기에 우리가 성령을 따르면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육체의 소욕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면 우리 안에 성령의 열매들이 맺혀지게 됩니다. 그 열매들은 이 세상에 어떤 보화보다도 귀중한 것들입니다. 성령의 열매들이 어떤 것이냐면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5: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사랑은 무조건적인 헌신적인 사랑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 내 안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희락은 기쁨인데 이것은 구원 받은 자로써의 기쁨입니다. 이것은 성령충만으로 나타는 표라고도 할 수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는 것입니다. 화평 이웃과의 화평입니다. 오래참음 어떤 시련을 당해도 다른 사람에게 관용할 줄 아는 성품으로 하나님이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자비 하나님의 자비로운 성품이죠, 양선 계속해서 선을 베푸는 것입니다.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충성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충성을 다함, 온유 예수님이 자기를 모욕하고 십자가에 못박는 자들을 앞에서도 관용하심, 절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육체의 소욕을 절제하는 것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세상의 헛된 영광을 구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명심하고 성령을 따라 세상의 헛된 영광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