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2024.1.14 주일오전예배설교> 주님 날개 아래 거하라 (눅13:31-35)

박선준목사 2024. 1. 14. 14:51

주님 날개 아래 거하라

예수님 사역의 주 활동 무대는 갈릴리 지역입니다. 그곳에서 많은 기적을 일으키시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대부분 갈릴리 출신들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야사역을 시작하면서 처음 일으킨 기적이 물을 포도주로 바꾼 사건인데 이것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시죠. 이 기적을 시작으로 해서 예수님은 갈릴리 지역에 여러 곳을 다니시면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낫게 하는 수많은 기적를 일으키십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고라신, 벳세다 고을에서 더 많은 기적을 행하셨는데, 그런데 그들이 회개하지 않는 강퍅함을 보시고 엄하게 책망하십니다.

11:21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이렇게 예수님은 갈릴리 지역에서 많은 활동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이름이 갈릴리 지역에 파다하게 알려집니다. 그뿐만 아니라 유대 전역에까지 알려집니다.

 

그 당시 갈릴리 지역을 다스리는 자는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라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다는 소문이 돕니다. 이 소문을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알려 줍니다.

13:31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헤롯이 당신을 죽이려고 하니 여기를 떠나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자들인데, 왜 여기서는 예수님의 신변을 걱정해주는 척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아마도 이들은 헤롯의 사주를 받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갈릴리 지역에서 점점 유명해지면서 헤롯이 불안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예수를 죽이려고 한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바리새인들에게 전하게 하여 예수님이 겁을 먹고 스스로 갈릴리 지역을 떠나게 하려는 것이죠.

예수님은 어딜 가서나 주권자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태어났을 때부터 그랬습니다. 그때는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자가 헤롯대왕이었는데, 헤롯대왕은 아기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것을 알고 예수를 죽이려고 군대를 보내어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는 다 죽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는 갈릴리지역의 분봉왕인 헤롯안티파스가 예수님을 자기 관할 지역에서 쫓아내려고 하고 있고요.

당시 백성들의 존경을 차지하고 있던 층은 바리새인들이었는데, 또 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어떻게 서든지 꼬투리를 잡아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또 예수님이 유대 예루살렘에서 사역을 하시자, 이번에는 예루살렘 성전을 다스리는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결국 그들이 무리들을 동원하여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죠.

예수님은 세상의 주권자들에게 배척을 당하십니다.

 

예수님은 왜 이 세상 주권자들에게 배척을 당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이 이 세상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모든 우주만물은 예수님의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요한복음 1:3절이 말씀합니다.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 했는데, 거기서 그는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이십니다. 이 세상 만물 중에 예수님이 없이 되어진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을 지으신 세상의 주인이신 것이죠.

주인인 예수님이 자기 땅에 오셨으면 모든 백성은 주인인 예수님을 기쁨으로 모시는 것이 정상인데, 그런데 환영하지 않는 것입니다. 도리어 예수님에게 자기 지역을 떠나라고 배척하고 죽이려고 하는 것이죠.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왜 세상의 주권자들은 주인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일까요?

예 자기의 왕권을 내주기가 싫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온 세상의 왕이심을 인정하게 되면 나는 속히 왕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는 것이죠.

군대 조직은 소대, 중대, 대대, 연대, 사단, 군단 뭐 이런 식으로 되어있습니다.

대대에서는 대대장이 두목입니다. 대대장이 뜨면 대대 내에 있는 중대장을 비롯한 모든 장병들은 차렷 자세로 충성하고 경례를 올려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대대에 연대장이 방문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예 대대장이 차렷자세로 연대장에게 경례를 해야 하는 것이죠. 사단장이 오면요 연대장이 차렷해야 하고 군단장이 오면 사단장이 차렷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최고 통수권자가 누구죠? 예 대통령이죠. 대통령이 오면 어떻게 될까요? 국방부장관, 합참의장, 군단장, 사단장 할 것없이 다 차렷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주인이시고 만왕의 왕이십니다. 모든 무릎이 예수님 앞에 꿇어야 하는 것이죠.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는 순간 세상의 왕들은 왕의 자리에서 내려와서 차렷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주권자는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안에 헤롯 왕이 다 있습니다. 왕의 자리에서 내려오기를 싫어하고 자기가 왕 노릇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왕이심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예수님이 나의 영역에 오면 그 즉시 내 영역에서 떠나라고 합니다. 안 떠나면 가만 안 놔둘 거라고 엄포까지 놓습니다. 내 영역은 내 마음대로 할 거라는 것이죠.

여러분 안에 있는 헤롯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예수님께 왕의 자리를 내어드리고 예수님이 명령하시면 언제든지 복종하려고 차렷 자세로 있나요? 아니면 오늘 본문의 헤롯처럼 어떻게든지 예수님을 내 영역에서 밀어내고 자기가 왕 노릇 하려고 있지는 않나요?

여러분 예수님을 왕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 인생은 어떻게 될까요? 멸망합니다. 왜냐하면 내 인생의 진짜 왕은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나를 창조하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대통령이 오셨는데 대대장이 일어나지도 않고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 즉시 잘리죠. 전시 때에는 그 자리에서 사형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런 세상을 보고 안타까워하시고 애통해합니다.

13: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여기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라고 부르시는데 이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온 세상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아 네가 선지자들을 죽이고 하나님이 너에게 보낸 자들을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자기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 자녀를 모으려고 한 적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입니다.

이런 예루살렘을 비통한 심령으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하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왜 비통한 심령으로 부르는 것일까요? 이런 예루살렘은 파멸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35절에 말씀하십니다.

13:35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이것은 완전히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루살렘은 bc586년에 바벨론제국에 의해 완전히 쑥대밭이 되고 멸망합니다. 그 이후로 이스라엘은 페르시아제국의 지배를 받고 또 헬라제국의 지배로 넘어갔다가 헬라가 로마로 넘어가며서 이스라엘도 로마제국 통치를 받게 되죠. 그런데 bc70년 경에 이스라엘이 로마에 대항하는데 이때 로마의 디도장군이 예루살렘을 짓밟아 버리는데 돌위 돌하나 남기지 않고 완전히 파쇄시켜 버립니다.

그런데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이 파멸의 말씀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왕 되심을 거부하는 자의 집은 황폐케 될 것입니다. 진리를 벗어나 세상에서 방황하고 헛된 욕심에 빠져서 허망한 일에 몰두하다가 인생이 종치게 될 것입니다. 그 인생은 평생 바람을 잡으려고 하는 헛된 인생을 살다가 이슬처럼 없어져 버리는 허무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참 왕이신 예수그리스도를 거부하여 황폐케 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정말 두려워할 것은 영원한 멸망입니다. 35절 다시 보시면

13:35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을 거부한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언제까지요?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요.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왕으로 받아들이지 않던 온 세상이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예수그리스도를 찬송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언제일까요? 예 예수그리스도가 하늘에 모든 천군천사를 대동하여 세상을 심판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다시오시는 재림의 날이죠. 그때까지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비로써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서야 예수님을 거부하던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주이심을 깨닫게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왕의 왕으로 인정하고 찬송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천국 문은 이미 굳게 닫혀버렸고 그들은 하나님 나라 밖으로 쫓겨나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 뿐입니다.

그들이 가야 할 곳은 영원한 지옥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예수님 날개 아래 거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는 지금도 암탉이 자기 새끼를 자기 날개 아래 모으려고 함같이 이 세상의 모든 영혼들을 향해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왜 이 세상을 자기 날개 아래로 모으려고 하실까요?

이 세상을 자기에게 복종시켜서 자기의 권력을 강화시키려구요?? 그렇지 않죠. 예수님은 전능자이십니다. 우리 인간이 복종한다고 해서 예수님의 힘이 더 세지고 그런 한계를 가지신 분이 아닙니다. 여러분 무한대 더하기 1000과 무한대는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능력이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그럼 예수님은 왜 자기 날개 아래로 이 세상 사람들을 모으려고 하실까요?

그것은 세상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죄로 타락한 세상은 멸망 받을 수밖에 없기에 예수님이 자기 날개 아래로 모아서 멸망을 피하게 하려는 것이죠.

전쟁이 터져 적군의 폭탄이 떨어질 때 부모는 어린 자녀를 감싸 안습니다. 왜 자녀를 자기 품에 감싸 안는 것일까요? 예 폭탄으로부터 자녀를 보호하기 위함이죠. 그러나 부모의 날개는 너무도 약하죠. 폭탄이 떨어지면 부모나 자녀나 다 같이 죽을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날개 밑은 안전합니다. 어떤 폭탄이 떨어지더라도 예수님의 날개 밑에 있는 자들은 구원을 얻습니다.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인간이 되어 세상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세상 죄값이 치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예수그리스도를 삼일만에 다시 부활시켜서 대속을 완성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는 자는 누구나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 날개 아래로 사람들을 모으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2000여년 동안 세계 곳곳마다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놓으시고 세상 모든 영혼들에게 내게로 오라고 외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가평기쁨교회도 계속해서 세상 영혼들을 향해 예수님께로 나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거부하고 예수님께로 나오기를 거부하는 자는 자기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 날개 아래 거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날개 아래 거하는 자들은 죄에서 구원을 받고 영원한 안식을 얻습니다.

 

그럼 어떻게 우리는 예수님 날개 아래에 거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자기의 힘을 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왕좌 자리에서 내려와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 인생의 모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예수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얻게 됩니다.

왜요? 예수님이 나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시고 나를 책임지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모셔 들이면 예수님은 영원히 나와 함께 하실 것이고 나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예수님 날개 아래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