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2024.2.18 오전예배설교> 자기를 비우기 (빌2:5-11)

박선준목사 2024. 2. 21. 14:06

자기를 비우기

신앙생활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선한 목자라고 하시고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양이라고 하십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는 시편1편에서 잘 말씀하셨죠.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3: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이처럼 양은 목자를 따라가면 모든 것을 얻게 됩니다. 푸른 풀밭으로 또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것이죠.

그런데 실제 우리네 인생은 왜 이리 부족한 것 투성이 인 것 같고 늘 불안하고 염려가 그치질 않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양인 우리가 목자인 예수님을 잘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목자이신 예수님만 바라보고 따라가야 하는데, 엉뚱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죠. 양이 목자를 보지 않고 엉뚱한 것을 보고 따라가는 순간 양은 어떻게 되죠? 길을 잃게 됩니다. 길을 잃으면 어떻죠? 불안해지죠. 그때부터 자기 힘으로 자기 안전을 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그 사람은 목자의 인도와 보호에서 떠나게 되고 만족함이 없고 늘 염려 속에서 살게 됩니다. 그래서 시편90편에 목자이신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사는 인생을 보고 수고와 슬픔이 가득한 인생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목자를 잃은 양은 결국 어떻게 될까요? 예 죽습니다. 늑대나 이리 같은 맹수를 만나서 잡혀 먹히거나 길을 잃고 헤메다가 굶어 죽든지 목말라 죽든지 죽는 것이죠.

이와같이 목자이신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생들은 결국 죄 가운데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탄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자기 욕심을 위해 살다가 죽게 만듭니다.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을 위하지 않고 자기를 위해 사는 것은 다 죄이고 잘못된 것입니다. 평생 죄의 길을 가다가 결국 죽어서 심판을 받아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양은요 목자를 따를 때 참 만족과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목자를 따르는 양은 길을 잃거나 맹수의 공격 같은 것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염려할 필요도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목자를 잃은 양과 같습니다. 죄로 타락한 세상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서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각자 자기 욕심을 따라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끝은 결국 멸망입니다.

 

그러나 목자이신 하나님은 길 잃은 자기 양들을 찾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세상에 인간이 되셔서 오셨습니다. 그분이 누구십니까? 예 하나님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길 잃은 양들을 찾으러 오신 목자이십니다. 그래서 요1011절에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이 이런 말씀하십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 라고 말씀합니다.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이 말씀은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이 길 잃은 양들을 찾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길 잃은 양을 찾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려야 할까요? 그것은 양들의 죄를 담당하기 위함입니다.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치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은 스스로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 이것은 완전히 자기 자신을 부인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죽으실 수 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모든 만물의 생명의 근원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도 바로 예수님의 생명에서 온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 6절이 말하고 있는데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하나님의 본체임을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은 성부하나님과 동일한 성자하나님이심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1장에 보시면 성자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고, 그가 모든 만물의 생명의 근원이심을 말씀합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가 인간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생명의 근원이신 분이 죽었다는 것은 완전히 자기를 부인한 것입니다.

이것을 7절에 자기를 비워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비운다는 것은 자기가 가진 모든 권세, 영광을 다 내려놓은 것을 말합니다. 7,8절을 보시면 예수님이 어떻게 자기를 비우셨는 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종의 형체를 가졌다는 것은 창조주가 인간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잠깐 인간의 모습을 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와 똑같은 완전한 인간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은 죄는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땅이 얼마나 넓습니까? 중국의 광활한 대지, 끝없이 펼쳐져 있는 러시아 시베리야 평야, 아프리카, 유럽,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대륙 어마 어마하게 넓은 땅들입니다. 그런데 그 땅보다 더 넓은 것이 바다이죠. 바다는 땅보다도 몇 배나 더 넓습니다. 땅이나 바다에 인간을 비하면 인간은 먼지보다 더 작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땅과 바다보다 훨씬 넓은 것이 무엇이죠? 하늘, 우주입니다. 우주는 너무 너무 커서 그 끝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우주보다 더 크신 분이 누구에요? 예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우주 안에 있는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완전 무에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전지전능의 하나님이 한 인간이 되었다는 것은 완전히 자기를 비운 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 이 낮아짐을 좀 더 잘 표현해 보려고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종의 형체인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본체이신 분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비우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8절에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자기를 비워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었는데, 거기서 더 자기를 낮추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시고 결국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이 죽음은 목자가 길 잃은 자기 양들을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린 죽음입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가진 전능자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생명까지도 다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자기 비움이고 낮아지심이고 자기 부인입니다.

 

그런데 5절에 보시면 이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가 따라가야 할 본이라는 것입니다.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너희도 예수님처럼 자기를 비우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비우라는 것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의 비움과 우리의 비움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움은 모든 좋은 것을 다 버림입니다. 모든 좋은 것을 한 단어로 말한다면 신성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능력 다 내려놓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움은 이렇게 모든 좋은 것을 버림이지만 반면에 우리의 비움은 모든 나쁜 것을 다 버림입니다.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거짓, 사기, 비방, 음란, 간음, 거역, 교만, 열등, 우월 등등 왜 이런 나쁜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비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 채우기 위함입니다.

왜 예수님은 모든 좋은 것을 버리고 자기를 비우는 것이죠? 예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비우는 것은 우리의 나쁜 모든 것을 가져가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모든 나쁜 것을 버리고 자기를 비우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을 얻기 위함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자기를 비우는 것은 예수님의 좋은 것을 채우기 위함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예수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은 자기를 비우는 것으로써 자기를 낮추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 예수그리스도를 따라 우리는 날마다 자기를 비워야 합니다. 나를 낮추고 나를 부인하고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나의 구주이심을 영접한 순간 나라는 존재는 이미 2000여년 전에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입니다. 나는 죽었음을 기억하고 나를 높이려는 모든 욕심을 버리고 나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날마다 자기를 비우는 자만이 예수님을 온전히 따라갈 수 있습니다.

자기를 버리고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는 예수님과 함께 모든 좋은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모든 불안과 염려가 사라지고 참된 평안과 은혜가 넘쳐나게 되고 불만족은 사라지고 감사와 기쁨이 넘쳐나게 됩니다. 이것은 세상이 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평안이고 은혜이고 감사이고 기쁨입니다. 이것은 탐욕으로 가득한 세상에서는 비밀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비밀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한때 바울도 탐욕의 세상을 따라가던 사람이었지만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후부터 전에 추구하던 모든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자아를 죽이며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런 그가 이런 고백을 하죠.

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4: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예수님을 따름으로 모든 상황에서 자족하기를 배웠다는 것은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법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가 됩니다. 물론 자기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죠. 그것은 오로지 능력 주시는 자 안에 모든 것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불안과 염려와 불만족에서 벗어나 완전 평안과 만족의 삶을 살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날마다 나는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임을 고백하고 자기를 비우고 예수님만을 따라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어느 순간부터 나는 없고 예수님만 있고 나의 삶에 예수그리스도의 평강이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낮추고 성실하게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라 가는 자는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높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자기를 죽기까지 낮추신 예수님을 하나님이 어떻게 높이셨죠?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모든 무릎을 예수 앞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낮아지신 예수님을 가장 높이신 것이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23: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이 세상에서 날마다 자기를 비우고 자기를 낮추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아를 죽이며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는 하나님이 그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높이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