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2024.2.25 주일오전예배설교> 으뜸에서 섬기는 자로 (막10:32-45)

박선준목사 2024. 2. 25. 15:48

으뜸에서 섬기는 자로

중국에 모택동 정권하에서 중국 공산당에 의해 옥에 갇혀 세뇌당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13명은 선교사였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인 교도관들은 제국주의와 자본주의가 심어 놓은 그릇된 사상을 모두 제거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들은 강제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도관들은 그들의 두 손, 두 발을 묶고 며칠 심지어 몇 주 동안 그들을 재우지 않으면서 생각을 교정하는 질문들을 던졌고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매질을 했습니다. 의지가 강한 죄수들의 생각을 깨뜨리는 데에는 3년의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결국에는 모두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고 자술서에 서명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세뇌를 당한 그들은 새로운 죄수들을 세뇌시키는 일에 동원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본국으로 추방되었을 때 그들은 처음에는 혼란스러워 보였고 약간의 편집 증세도 나타났으며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확실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두 사람을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강제적으로 믿을 수밖에 없었던 공산주의자들의 선전 내용을 비난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세뇌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분은 자신을 따라오는데 치루어야 할 대가를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나를 따라오려면 고난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결단코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따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 때문에 손해를 보고 멸시를 당하고 매를 맞고 옥에 갇히고 목숨을 잃기까지 하면서도 예수님을 원망하거나 비방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가 능욕 받는 것을 합당하게 여기고 기뻐하며 계속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모택동, 김일성 같은 공산주의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세뇌시켜서 주석과 공산당을 위해 충성을 다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패하였습니다. 주석과 공산당을 위해 충성을 다하라고 아무리 세뇌를 시켜도 겉으로는 충성을 다하는 것 같지만 그들 내면까지 바꾸지 못합니다.

겉으로는 오로지 주석과 공산당을 위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기의 안전과 자기를 높이는 것이 우선입니다. 죄로 타락한 인간의 내면에는 오로지 자기를 위하는 욕심이라는 죄악의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죄악의 본성을 공산주의로 아무리 세뇌시켜도 제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그것을 해내셨습니다. 지난 2000여년 동안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내어드렸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욕심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면 여러 고난이 있음을 알면서도 누가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기꺼이 그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면 자기 욕심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일까요?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셨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 적들과 싸울 때 장수가 제일 앞장서서 나를 따르라라고 외치며 나아갈 때, 병사들은 사기가 충천되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오늘 본문 32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라고 말씀합니다.

10:32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데 무리들 제일 앞에서서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자 무리들이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따르는 자들이 놀라고 두려워하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어떤 위기감 같은 것이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이 당시 예수님의 명성이 점점 높아지고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예수가 하나님을 모독하였다 하여 예수님을 잡아들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메시야라고 하는 자는 출교시킨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유대지도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것은 위험이 따르는 것이죠. 11장에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러 예루살렘을 향해 가자고 했을 때도 도마가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고 따랐습니다. 이런 위기감이 있지만 무리들은 예수님을 뒤따라 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앞장서서 가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항상 위기감이 느껴집니다.

주일이 되면 하던 모든 생업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갈 때 위감이 느껴집니다. 주일에도 장사를 해야 안전할 것 같은데 그 안전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소득의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드릴 때 위기감이 느껴집니다. 헌금 내지 말고 차라리 그 돈으로 적금을 부으면 나의 삶이 더욱 안전하고 이득이 될 것 같은데, 그러나 모든 사사로운 생각을 버리고 온전한 십일조와 감사예물을 구별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전도하러 갈 때 위기감이 느껴집니다. 가서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하지, 사람들이 싫어하고 저리 가라고 소리치면 창피할 텐데, 전도하다가 맞아 죽는 것 아냐 등등 그러나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서 담대히 나가서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런 위기감들이 느껴지지만 계속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왜요? 예수님이 나의 앞에서 가고 계시기 때문이죠.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면 큰 해를 당하고 죽을 것을 아셨습니다. 이것을 미리 다 아시는 것은 그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죠. 예루살렘에 가면 자기가 어떤 해를 당할 것이고 어떻게 죽을 것인지 다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12제자를 따로 부르셔서 조용히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자기가 예루살렘에서 해를 당하고 죽을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런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33절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어떤 해를 당할지 말씀하십니다.

10:33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10:34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능욕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것을 아셨지만 그것을 피하지 않으시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나아가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 십자가의 길을 가면 고난을 받게 됩니다. 고난을 받을 때 예수님이 나보다 먼저 고난을 받으시고 앞에 가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고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욕심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은 이 십자가의 길이 진정 승리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능욕과 고난과 죽음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을 향해 성큼 성큼 앞서 가신 것은 이 길만이 승리의 길인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셨던 것은 그 고난 뒤에 승리의 영광이 있었기 때문인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않으면 승리의 영광도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았다면 그분은 우리의 구원주가 될 수 없으며 모든 입이 그분을 주라 시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분을 높여 모든 이름 위에 가장 뛰어난 이름을 주실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아시고 죽음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을 향해 기꺼이 가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제자들의 마음은 예수님과 같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고난이 없는 영광을 추구하였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시면 다윗의 왕위를 물려 받아서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이 될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제자인 자기들이 한 자리씩 차지할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이런 기대로 가득찬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나와 청합니다.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이런 요구는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전혀 알지 못하는 무지에서 나오는 요구인것입니다. 38절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10: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여기서 내가 마시는 자, 내가 받는 세례는 십자가의 길을 걷는 고난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와 같이 고난을 받을 수 있겠느냐 그 말입니다. 그러자 야고보와 요한이 단번에 할 수 있나이다합니다. 이들이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질문하신 의미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그저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욕심에 대답한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인자하신 예수님은 그들의 잘못을 책망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수준에 맞추어서 대답하여 주십니다.

10:39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10: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훗날 이들이 정말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걸을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제자들이 야고보와 요한에게 화를 냅니다. 왜 화를 내는 것일까요? 예 야고보와 요한이 자기들보다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 까봐 그런 것이죠. 다른 모든 제자들도 십자가 고난이 없는 영광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오늘 이렇게 교회나와서 예배하는 것이 그저 불안한 마음이나 편하게 하고 이 다음 천국에서 편안히 살 궁리만 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 땅에서 예수님을 따르다가 받는 십자가의 고난은 피하고 영광만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은 절대로 예수님을 따라갈 수 없고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누릴 수 없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것은 영광을 받으러 가시는 것이 아니라 능욕과 침뱉음과 매맞음과 채찍질과 십자가에 못박히고 죽으러 가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없는 영광을 추구하는 자들은 고난이 왔을 때 모두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 버릴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을 비롯한 모든 무리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시자 모두 다 예수님을 버리고 떠나가 버립니다.

여러분 십자가의 길을 거치지 않고 영광을 추구하는 것은 다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하는 것일 뿐입니다. 제자들이 아직 고난이 닥치지 않았을 때는 자기가 예수님의 제일 충성된 자라고 큰 소리쳤지만 고난이 닥쳐오자 다 자기 목숨을 위하여 주님을 버리고 도망가 버립니다. 그와 같이 고난없는 영광을 추구하는 자들은 자기를 위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고난이 닥쳐오면 다 뒤로 빠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을 각오하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들은 이 땅에서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들은 십자가의 길을 가는 동안 자기를 높이려는 모든 마음을 자꾸만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것이죠.

이렇게 고난을 각오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만이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없이 영광을 추구하던 제자들은 모든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지만 그러나 이 제자들이 나중에가서 변화가 됩니다. 으뜸이 되고자하는 마음을 버리고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자들이 됩니다. 묵묵히 십자가의 길만을 가는 자들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배반한 가룟유다를 제외한 11명의 예수님의 제자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전하다가 다 순교를 합니다.

지금 이들은 저 하늘 나라에서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영광을 누리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십자가의 길이 없이는 영광도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큰 자가 되고 싶으십니까? 그럼 섬기는 자가 되십시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10:43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우리 앞에 가신 예수님은 섬기셨고 자기 목숨을 내어주셨습니다.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 예수님을 따라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다음 하늘에서 높임을 받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