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2024.3.24 주일오전예배설교> 십자가의 고난 (마15:12-41)

박선준목사 2024. 3. 24. 15:48

십자가의 고난

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나?

유대지도자들의 모함

빌라도의 타협

하나님이 버림

 

십자가는 로마의 사형 형틀입니다. 로마제국은 여러 나라를 정복하면서 넓어진 영토를 다스려 나가기 위해 강력한 통치를 하였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십자가 처형입니다. 로마에 대항하는 자들은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박으면 사람이 곧바로 죽지 않고 서서히 고통 속에 죽어가게 되어서 사형을 당하는 자들에게는 너무도 무서운 형벌이죠. 그리고 십자가는 전시 효과가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언덕에 세워놓아서 사람들이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는 죄수들을 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로마에 대항하는 자는 이렇게 잔인하게 죽는다는 것을 보여주어 아무도 로마에 대항할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죠.

특히 이스라엘사람들에게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것은 아주 꺼려지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무에 달려 죽는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21: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그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죄인으로 정죄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저주를 받는 자가 되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아주 아주 꺼려지는 것이죠.

그런데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지도자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하자고 결의를 한 것입니다. 그들이 그런 결의를 한 것은 예수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계략이었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면 그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가 메시야라느니 하나님의 아들이라느니 그런 것은 다 거짓으로 판명이 되는 것이죠. 그리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면 예수는 공식적인 죄인으로 판명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로마총독의 재판을 통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는 공식적으로 죄인으로 판명이 되어서 예수를 추종하는 자들이 유대 지도부에 반발 할 수 없게 되는 것이죠. 그럼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은 자연히 사라져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지도부는 밤중에 예수를 체포해 와서 급하게 산헤드린 공회를 열어 예수의 사형을 언도합니다. 유대지도부가 이렇게 신속히 서두르는 것은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안식일이 지난 뒤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하면 그 소문이 온 백성에게 퍼져서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예수를 체포하자마자 새벽에 산헤드린 공회를 열어 사형언도를 하고 결박하여 로마 빌라도총독에게 데리고 나와 고발을 한 것입니다.

산헤드린 공회에서 예수를 사형언도하는 죄목은 신성모독입니다.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빌라도 총독에게 고발한 혐의는 신성모독이 아니라 로마에 대항하는 반역자였습니다. 유대지도부는 대략 세 가지 혐의로 예수를 고발합니다.

예수가 유대인들을 선동하여 혁명을 일으키려 한다.

로마황제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한다.

자칭 왕이라고 떠들어 대고 있다.

이것은 예수를 정치적 반동가로 고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빌라도총독은 이 문제에 관여되는 것이 싫어서 유대인들에게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고 떠넘기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기들에게 예수를 죽일 권한이 없다며 빌라도 총독이 판결을 해주어야 한다고 강하게 압박을 합니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은 예수가 죽어야만 할 이유를 여러 가지로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는 그런 유대인들의 고발에 전혀 대응을 하지 않습니다. 첫 번째 고발내용인 예수는 유대인들을 선동하여 혁명을 일으키려 한다, 사실 예수님은 혁명같은 것에는 전혀관심도 없었고 그런 일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둘째 고발은 로마황제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한다고 했는데 금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말씀하셨죠. 그리고 자칭 왕이라고 했다는데, 예수님은 이 땅에서 왕이 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사람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할 때 피하셨죠.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고발하는 것마다 다 반박할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 한마디도 자기 변호를 하지 않습니다.

빌라도가 예수에게 묻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님이 이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을 하면 예수님은 로마에 대항하는 반동가로 몰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네 말이 옳도다빌라도가 다시 묻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사람들이 너를 얼마나 많은 것으로 고발하는 지를 보라, 너도 자기 자신을 변호하라는 것이죠.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 대답도 아니하십니다. 이것을 본 빌라도는 놀라고 이상하게 여깁니다.

예수님은 왜 아무 대응도 하지 않고 침묵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침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리 유대인들이 고발을 하고 빌라도가 재판을 한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하나님의 뜻대로 될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입을 열지 않고 침묵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다가 세상의 모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그것에 하나 하나 대응하려고 하면 문제가 더 복잡해집니다.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침묵하며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묵묵히 걸어가는 것입니다.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시편119:116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119:116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됩니다. 아무리 이 세상이 서로 주도권을 잡으려고 소리치고 요동치더라도 결국은 하나님의 뜻만 이루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주도권은 하나님이 쥐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으르렁 거리고 빌라도가 내가 예수를 죽일 수도 있고 풀어 줄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떠벌려도 모든 주도권은 침묵하고 있는 예수님이 다 쥐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자기 목숨을 버리지 않으시면 아무도 예수님을 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버리시기로 작정하셨기에 침묵하고 내버려 두고 계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여러 가지로 예수님을 고발하지만 그러나 빌라도는 예수에게 아무 죄가 없음을 압니다. 그리고 유대지도부가 예수를 자기에게 넘기는 것이 그들의 시기심 때문인 것까지 파악합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의 피를 자기 손에 묻히지 않기 위하여 명절이 되면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어서 그 전례를 이용하여 예수를 놓아주려고 합니다. 그래서 민란과 살인으로 유명한 죄수 바라바와 예수 중에 누구를 놓아주기를 원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고 소리치게 만듭니다. 무리들이 일제히 바라바를 놓아 달라!! 소리치자 빌라도는 자기의 꾀가 통하지 않는 것을 보고 예수를 관정으로 데려다가 채찍질을 하게 합니다. 이것은 부당한 조치입니다. 왜 아무 죄없는 예수를 채찍질을 합니까? 이것은 빌라도가 자기 위기를 넘기려는 비겁한 조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으십니다.

16절에 보시면

15:16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여기서 군인들은 빌라도가 가이사랴에서 데리고온 용병들일 것입니다. 이들은 비유대인들로 유대인들을 통제하기 위해 모집된 외국 용병들인 것이죠. 이들이 예수를 브라이도리온이라는 관정 뜰 안으로 끌고가서 예수의 옷을 벗기고 인정 사정없이 예수의 몸을 채찍으로 갈기 갈기 찢어놓습니다. 사람이 피를 보면 더 흥분하고 잔인해 지는 것 같습니다. 군병들은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 예수의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망토 같은 옷을 입힙니다. 자색 옷은 주로 왕들이 입는 색깔의 옷입니다. 자색 망토는 예수의 피에 물들어 더욱 붉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군인들은 예수를 희롱합니다. 군인들이 자색 망토를 입은 예수에게 절을 하는 시늉을 하며 유대인의 왕 만세를 외치면서 그들은 갈대로 예수의 머리를 계속 때리고 침을 뱉으며 조롱을 합니다.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피로 얼룩진 자색 망토를 입은 예수의 모습은 너무도 비참하지만 우스꽝스러운 모습인 것이죠.

빌라도는 이런 예수를 무리에게로 데리고 나와 보라 이 사람이로다합니다. 예수의 비참함을 보여주며 이 정도로 이 일을 끝내려고 하는 것이죠. 빌라도가 무리에게 말합니다.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무리가 다시 소리칩니다. “그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빌라도가 어찜이냐 그가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합니다. 유대인들이 대답합니다. “우리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함이니이다.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합니다.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지만 유대인들은 더욱 반발하고 빌라도가 꼼짝 못하게 하기 위해서 로마 황제 가이사를 끌어들입니다.

이 사람을 놓아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닙니다. 자기를 왕이라 하는 예수는 로마 가이사황제에게 반역하는 것입니다합니다.

무리들이 일제히 소리 지릅니다.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그때 빌라도가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그러자 대제사장이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합니다. 이에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줍니다.

군인들은 예수를 데려다가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갑니다.

 

십자가에 못박히는 죄수는 자기가 못박힐 나무토막을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야 했습니다. 세로 나무토막은 골고다 언덕에 세워져 있고 가로 나무토막을 지고 올라가는데 그 무게가 20kg정도 된다고 합니다. 장정이 20kg정도의 나무토막을 지고 언덕을 오르는 것은 아주 벅찬 것은 아니죠. 그런데 본문 21절에 보면 로마군병이 지나가는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는 자를 붙잡아 억지로 예수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지고 예수와 같이 골고다 언덕을 오르게 합니다.

아마도 이렇게 한 것은 예수님의 몸이 너무 많은 해를 입어서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으로 보여집니다. 만약 조금만 더 예수를 채찍질을 하면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죽어 버릴 수 있기 때문에 길가던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십자가를 짊어지게 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구레네 사람 시몬을 설명하는데 21절에 보시면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설명하는 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알렉산더와 루포라는 이름이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인 것이죠.

여러분 최준희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그러나 탤렌트 최진실의 딸 최준희하면 금방 느낌이 오죠. 루포는 롬16:13에 사도바울이 로마교회에게 자신의 동역자들을 문안시킬 때 나옵니다.

16: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그러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짊어졌던 구레네 사람 시몬은 그 후에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그의 모든 가족들도 예수님을 믿고 따른 것이죠.

여러분 억지로라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복입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거운 멍에처럼 느껴지지만 그것은 나에게 예수님을 알게 해주는 복의 통로인 것이죠. 여러분 지금 예수님의 멍에를 짊어지고 예수님을 열심히 따르십시오. 그럼 그것은 구레네 사람 시몬처럼 영원토록 빛나는 영광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에 오르자 군인들은 몰약을 탄 포도주를 예수에게 줍니다. 보통 죄수들은 몹시 목이 타기 때문에 포도주를 벌컥 벌컥 마시지지만 예수님은 받지 아니하십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포도주로 자신의 정신이 흐릿해지고 고통을 감소시키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는 것은 인류가 당해야 할 죄값과 고통을 대신 온몸으로 지고 가는 대속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아주 정신이 명료한 상태였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예수를 보고 모욕합니다.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예수를 욕하고 조롱합니다.

예수님은 아무말도 하지 않으시고 모든 고난을 당하십니다.

그리고 낮12시쯤 되었을 때 온 땅에 어둠이 임하더니 3시까지 어둠이 계속됩니다.

이 어둠은 결코 일식 같은 자연 현상이 아닙니다. 이 때는 만월이기 때문에 일식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습니다. 오후3시쯤 되었을 때 갑자기 예수님께서 크게 소리를 지르십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십니다.

왜 하나님은 예수님을 버리시고 죽게 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죄인인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영생을 주시기 위합니다.

예수님이 숨지셨을 때 예루살렘의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쫙 지어지면서 둘이 됩니다. 이 휘장은 아주 두껍게 짠 튼튼한 휘장으로 황소가 양편에서 달려도 찢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는 것이죠. 이것은 사람이 찢은 것이 아닙니다. 누가 찢은 것일까요? 예 하나님이 찢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성소의 휘장을 찢으신 것일까요? 그 이유는 예수의 죽음으로 세상 죄값이 치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늘의 성소를 여는 우리를 살라기 위한 것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쳤을 때 예수님이 가만 계셨던 것은 자신이 십자가에 죽어야 죄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이 세상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세상에 죄인들을 계속해서 구원해내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으면 예수님의 피로 모든 죄가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제 이 세상에 나가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해야 합니다. 세상이 비웃고 조롱해도 그런 것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세상의 조롱과 핍박에 아랑 곳 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십자가를 짊어지셨던 것처럼 우리도 인내하며 끝까지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비웃고 조롱하고 요동을 치더라도 모든 주권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을 따라 가는 사람은 반드시 승리하게 됩니다. 여러분 끝까지 인내하시고 예수님 바라보고 끝까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