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2024.7.14 주일오전예배설교> 우리를 찾아 오셨어요 (눅15:1-7)

박선준목사 2024. 7. 20. 09:33

나를 찾으러 오셨어요

 

세상의 많은 종교들은 열심히 선행을 하고 도를 닦으므로 자기들이 믿는 신에게 나아가려고 합니다. 또 자신이 신의 경지에 이르려고 합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해탈이라고 하죠. 요가도 명상을 통하여 신의 경지에 이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종종 그렇게 말합니다. 산에 오르는 길은 달라도 산 정상에 올라가면 다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불교, 유교, 이슬람교 등등 다 도를 닦는 길이 다르지만, 각자 열심히 열심히 도를 닦다보면 다 신의 경지에 이르러서 신에게 도달하여서 다 똑같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을 만나고 신의 경지에 이른 자들은 열심히 도를 닦아 해탈의 경지에 이른 도사 같은 자들인 것이죠.

그런데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내가 신에게 도달하기 위해 열심히 도를 닦으며 산 정상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 기독교의 신은 무엇입니까?

신이 산에서 내려와서 죄인인 나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산에 올라 만나는 신이 아니라 거룩한 하늘에 있는 신이 죄인인 나를 찾아 이 땅에 내려온 신입니다.

왜 내려오신 것일까요?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죽으니까 살리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것입니다.

그 신이 누구일까요? 예 예수님이시죠.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이셨습니다.

1 태초에 1)말씀이 계시니라 이 1)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4)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누구냐면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하나님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를 찾으러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에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예수님께 가까이 나옵니다. 1절에 보시면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여기서 가까이 나오니 할 때 이것은 현재 분사형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세리와 죄인들이 계속해서 예수님께로 모여 들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이면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세리와 죄인들 같이 소외된 자들이 예수님께로 나왔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기에게로 나오는 자를 내쫓거나 멀리하지 않으십니다.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마태복음 12:20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예수님은 가난하건, 병들건, 세리와 같은 죄인이건 자기에게로 나오는 자를 다 받아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3년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님 주변에는 늘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죄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반면 유대인들은 세리과 죄인들을 아주 경멸하였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경멸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은 누가복음18:13에 보시면 거룩한 바리새인과 죄인인 세리가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데 바리새인이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이같이 유대인들은 세리와 같은 죄인들을 아주 멀리하고 경멸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런 세리와 죄인들과 일체 교제를 금하였고 식탁에 앉는 일도 없었습니다. 세리와 죄인들과 교제를 하면 자기들도 부정케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멀리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너무도 거룩하여서 죄인들은 그들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 보다 몇 천배 몇 만배 비교할 수 없이 더 거룩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에게 수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가까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거룩해서 세리와 죄인들이 그들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는데, 어떻게 유대인들 보다 훨씬 거룩하신 예수님에게는 세리와 죄인이 끊임없이 가까이 나오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이 이들을 찾으러 이 땅에 내려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낮추어 죄인들에게 내려오셨기 때문에 죄인들이 예수님께로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나오는 세리와 죄인들을 영접하고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십니다. 그러자 그것을 지켜보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립니다.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을 부정케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길을 잃은 양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면서 한 영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고 헤매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합니다.

이 말씀은 당연히 그렇게 한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자신이 기르는 소나 양을 아주 귀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양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으면 목자가 그것을 찾으로 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다 공감하는 사실이기에 예수님은 4절에 양백마리 중에 한 마리가 길을 잃고 있으면 목자가 그 길은 양을 찾으로 간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가축을 얼마나 소중이 여기는지 눅13장에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시는데 귀신이 들려 18년 동안 꼬부라져 허리를 펴지 못하는 여인이 거기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여인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녀를 불러서 네가 병에서 놓였다하시고 안수하시니 곧 여자의 허리가 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그런데 이것을 지켜보던 회당장이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합니다. 이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18년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그러자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이처럼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소나 양 같은 가축들을 귀하게 여겨서 안식일의 규례를 범하면서 가축들을 풀어서 마시고 먹여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가축을 아주 소중히 여겼음을 아는 것이죠.

양의 목자는 자기 양을 아주 소중히 여기기에 양 100마리 중에 한 마리가 길을 잃고 헤매면 양 99마리를 들에 두고 한 마리를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여기서 왜 양 한 마리는 길을 잃고 헤매게 된 것일까요?

예 목자의 인도를 따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길을 갔기 때문이죠.

여기서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여 길을 잃은 양은 본문에 예수님께로 나온 세리와 죄인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세리는 자기 욕심을 채우는데 만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로마든 유대든 자기에게 돈을 많이 주는 쪽을 따라 갈 뿐입니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는데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쾌락과 정욕을 따라서 자기 마음대로 가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길을 잃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길 잃은 양은 우리 모두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말씀 듣기 싫어하고 각기 자기 마음대로 길을 가는 자들입니다.

로마서 3장은 그것을 분명히 말합니다.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길을 잃고 헤매는 자들입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여러분 길을 잃은 양은 내버려 두면 어떻게 될까요?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양은 시력이 약하기 때문에 바로 자기 코앞에 있는 풀밖에 보지 못합니다. 멀리 길이 어떻게 놓아져 있고 어디로 갈지 모릅니다. 그래서 바로 앞에 풀만 보고 따라가다가 절벽에 떨어질 수도 있고 맹수 같은 짐승들에게 발각되면 즉시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푸른 초장과 물가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하기에 굶어 죽든지 목이 말라 죽기 쉽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이 길 잃은 양처럼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죄로 타락하여 진리의 길을 알지 못하고 평생 죄만 짓다가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 길 잃은 양을 찾기 위하여 목자가 오는 것입니다. 목자가 양을 찾아 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왜요? 그 양을 너무도 소중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저 하늘에 계시던 하나님이 자기의 길을 잃어버린 양들을 찾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누구십니까? 예 바로 우리 구주 예수님이십니다.

 

여러분 길 잃은 양은 누구를 만나면 사는 것입니까? 목자이죠. 양에게 목자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것입니다. 목자만 따라가면 양은 자기의 생명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얻게 됩니다.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양은 목자를 따라가면 자기를 잡아먹으려는 맹수들로부터 보호를 받을 뿐만 아니라 푸른 초장 쉴만 물가 모든 것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 양이 목자를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양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목자가 양을 찾아와야 양은 목자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길 잃은 양은 절대로 스스로의 힘으로 목자에게 갈 수 없습니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자기 힘으로 배있는 쪽으로 갈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배가 물에 빠진 사람에게 와야하고 구조대가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그 사람을 건져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로 타락하여 길을 잃은 우리는 우리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가 열심히 도를 닦고 착한 일 많이 하고 선하게 살아서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 들어가야지, 여러분 그런 생각은 수영도 못하고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이 자기 힘으로 부산에서 일본까지 헤엄쳐서 가겠다고 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추악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인간의 마음입니다.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마음이 부패된 인간은 절대로 스스로 진리의 길을 알지도 못하고 갈 수도 없으며 평생 죄만 짓고 살다가 죽어서 심판을 받아 영원한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길 잃은 양은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목자가 양을 찾아오지 아니하면 양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목자가 양을 찾아왔습니까? 안 왔습니까? 찾아왔습니다.

5절 보세요.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찾아냈다는 것이죠. 여러분 목자는 언제까지 양을 찾을까요? 찾을 때까지입니다. 4절에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여러분 우리 목자이신 길 잃은 우리를 찾기 위해 이 땅에 오셨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목자이신 예수님이 지금 이 자리에 계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목자이신 예수님은 자기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셔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목숨을 버리지 않으면 자기 양인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양들을 사망에서 건지려면 반드시 그 댓가로 죽어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 목자이신 예수님은 기꺼이 양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자기 양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선한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아무 죄없으신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죄값이 치루어졌습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믿기만 하면 모든 죄가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죽으신 예수님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삼일만에 부활시키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어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게 됩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시는 우리의 참 목자이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는 자는 영생을 얻게되고 예수님 안에서 하늘에 모든 신령한 복들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그 선한 목자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찾아 우리 앞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힘이나 노력으로 하나님께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값을 치루시고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우리에게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목자가 길잃은 양을 찾아서 왔지만 그러나 양이 목자를 거부하고 여전히 자기 마음대로 가려고 한다면 그 목자의 구원이 그 양에게 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이심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나를 죄에서 구원하신 나의 구원자이심을 믿고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내 마음대로 내 멋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오직 목자의 뒤만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목자 어디로 인도하든 목자가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믿고 목자만 따라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길 잃은 양이 자기를 찾아온 목자를 영접하고 자기 길을 버리고 목자를 따를 때 목자는 너무 너무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목자가 얼마나 기뻤던지 양을 어떻게 했습니까?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여러분 내가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어떻게 해주셨기 때문이죠? 예 나를 찾아오셨기 때문이죠.

예수님이 나를 찾아 제주도, 미국에서 온 것이 아니라 저 하늘에서 내려오셨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희생하시고 나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이제는 내 마음대로 살고자 하는 어리석음을 버리시고 나의 목자이신 예수님만을 따라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