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주일오전설교> 승리자는 하나님 (창29:31-30:24)

박선준목사 2019. 5. 29. 13:21



승리자는 하나님


진정한 승리자는 어떤 사람인가?

집착을 버리는 사람

경쟁심을 버리는 사람

 

사람들은 누구나 승리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패배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반드시 승리자가 되시기를 축복하고 축복합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승리와 성경에서 말하는 승리가 다릅니다.

그래서 세상은 경쟁이 아주 치열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승리자가 되려면 상대방을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참 숨가쁘게 돌아갑니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사업장에서도 서로 이기기위해서 치열하게 경쟁합니다.

그런데 내가 승리자가 되려면 꼭 상대방을 이겨야 승리자가 되는 것일 까요?

승리자는 꼭 1등만 승리자인가요? 2등은 승리자가 아닌가요? 그럼 3등은요? 그럼 3등까지 금,,동메달 까지는 승리자로 치면 나머지 45등 은 모두가 실패자인가요?

그렇지 않죠. 승리라는 것이 단순히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라는 생각은 올바른 생각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대방과 나를 비교하는데서 나오는 승리의 단순 개념입니다. 단순히 내가 너 보다 점수가 높으니까 내가 승리했어, 내가 너보다 돈이 많으니까 내가 승리자야, 내가 너보다 빠르니까 승리자야, 이런 인식들은 다른 사람과 나를 단순 비교해서 내가 상대방보다 좀 우월하면 승리자고 못하면 나는 패배자라는 것이죠. 이런 논리는 아주 저차원적이고 심지어는 악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탐욕을 자극시켜 오직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영광과는 더욱 멀어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식으로 승리의 개념을 말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성전에서 헌금함 앞에 앉으셔서 사람들이 헌금 하는 것을 보십니다. 여러 부자들은 헌금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한 가난한 과부가와서 헌금을 하는데 두 렙돈을 넣는 것입니다. 두 렙돈은 아주 작은 금액의 돈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하십니다. 그들은 다 풍족한 중에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가난 한 중에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다라고 말씀 하십니다.

예수님의 평가는 단순히 금액이 많으냐 적으냐 그것만을 가지고 판단하시는 것이 아니죠.

마태25장에 보시면 한 주인이 먼 나라에 가면서 종들에게 자기 소유를 맡깁니다. 종들의 재능에 따라서 맡기는데, 한 종에게는 금5달란트, 다른 종에게는 금2달란트, 또 다른 종에게는 금 1달란트를 맡깁니다. 1달란트는 오늘날 돈으로 20억이 넘는 큰돈입니다. 그리고 주인은 떠나가는데요, 주인이 떠나자 5달란트 2달란트 받은 종은 그 즉시 가서 장사를 하여서 각각 5달란트 받은 자는 5달란트, 2달란트 받은 자는 2달란트를 남깁니다. 그러나 1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이 엄한 사람으로 여기고 혹시나 장사를 하다가 잃으면 주인에게 된 통 혼날 것으로 여기고 겁이나서 그 달란트를 그냥 땅에 묻어버리죠. 세월이 지나서 주인이 돌아옵니다. 돌아와서 종들을 불러 회계를 하는데요, 5달란트 종은 5달란트 남기고, 2달란트 종은 2달란트 남긴 것을 보고합니다. 그 때 주인이 칭찬을 하는데요, 2,5달란트에 에 대한 칭찬이 똑같습니다. 5달란트 받은 자가 많이 남겼다고 더 칭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둘은 자기의 재능대로 최선을 다하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하고 칭찬이 똑같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훗날 주님 앞에 섰을 때 이런 칭찬을 받는 승리자가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투자도 안하고 그냥 1달란트를 땅에 묻었다가 그대로 가져온 종을 보고 주인이 대노합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꾸짖고 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한달란트 받은 종은 실패자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주인의 뜻과 전혀 다르게 주인이 준 달란트를 그냥 묶혀둔 것이죠.

이렇게 하나님이 보시는 승리자는 상대방보다 내가 빨랐냐, 많으냐 그런 것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실히 살았느냐 안살았느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곳에 있는 모든 분들이 다 참된 승리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세상에 승리자는 궁극적으로 오직 한 분 밖에 없으십니다. 그 분은 누굴까요? 예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은 오로지 하나님의 뜻만이 이루어지는 세상입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의 승리를 위해서 온갖 탐욕을 부리고 반칙을 쓰고 별에 별짓을 다 하지만 그러나 사람의 승리는 다 허무한 것으로 끝나버리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뜻만이 이루어지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인 것이죠.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참 승리자입니다. 왜냐하면 결국은 하나님이 승리하시기 때문에,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을 따르는 자는 하나님과 함께 승리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죠.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따름으로 참 승리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참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버려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는 없는 것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두 여자가 서로 승리하려고 심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 두 여자는 야곱의 아내인 레아와 라헬입니다. 야곱은 원래 라헬을 사랑했고 그래서 라헬을 얻기 위해서 삼촌라반을 위해 7년을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나 욕심이 많은 삼촌의 속임으로 야곱은 자신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라헬이 아닌 그의 언니인 레아를 아내로 취하게 됩니다. 야곱이 항의하자 삼촌은 7일 뒤에 라헬을 아내로 주지만 그대신 7년을 더 일하게 합니다. 그래서 결국 야곱은 레아, 라헬 두 자매를 한꺼번에 부인으로 맞이하게 된 것이죠.

그런데 이 두 자매가 엄청난 경쟁을 벌입니다. 언니는 동생을 이기려고 하고 동생은 또 언니를 이기려고 합니다. 마치 야곱과 에서가 서로 이기려고 싸웠던 것처럼요..그런데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만 아무도 승자는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만이 승자이십니다. 왜냐하면 이 두 자매의 뜨거운 경쟁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의 조상이 태어나게 됩니다. 이삭에게는 약속의 후사가 야곱 한 명이었지만, 야곱은 12명의 아들들이 다 약속의 후사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이루는 중요한 조상들이죠.

이렇게 여러분 상대방을 이기려고 머리터져라 싸우면 거기에는 승리자는 없습니다. 모두 패자일 뿐입니다. 다만 그들이 머리 터져라 싸운 덕분에 하나님의 뜻만이 이루어질 뿐입니다.

그런데 이 두 자매가 승리자가 될 수 없으면서 머리 터져라 싸우는 이유는 없는 것에 집착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보통 지금 내가 없는 것을 갖게 되면 나는 승리자가 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집니다. 그래서 그 없는 것을 갖기 위해서 엄청난 집착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그가 그것을 얻는다고 승리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요, 엄청나게 노력하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자기가 없는 그것을 취하였어요. 그럼 이제 만족하고 참된 승리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까요? 그 승리의 기쁨은 몇 일 못갑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눈은 또 자기에게 없는 것을 발견하고 또 그것을 취하는데 집착하게 하기 때문이죠. 그 사람 인생에는 참된 만족이 없습니다. 계속 없는 것을 취하려고 집착하다가 자기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 뿐입니다.

오늘 두 자매인 레아와 라헬이 자기에게 없는 것에 계속 집착합니다. 그래서 두 자매의 인생은 불행해 집니다.

레아는요 남편에게 사랑을 받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 29:31절에 보시면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받지 못함을 보시고그랬는데 이 사랑받지 못함이라는 말은 원어로 사네라는 단어인데 이것은 혐오를 받고 경멸을 당하는 사람에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레아를 미워했다는 것입니다. 아내이면서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남편이 자기와 같이 있기조차를 꺼려하는 것이죠. 밤만 되면 늘 남편 야곱은 라헬에게로 가버리는 것입니다. 남편이 옆에 있으면서 밤에 독수공방을 해야 하는 레아의 마음은 너무도 아팠을 것입니다. 그래서 레아는 남편에게 집착합니다. 레아는 남편의 마음만 내게로 돌리고 남편이 나와 함께 하면 자기가 승리자가 될 줄을 믿습니다. 그래서 레아는 오직 남편에게 집중합니다.

레아가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레아를 불쌍히 여기셔서 레아의 태의문을 여셔서 여러 아들들을 낳게 하십니다. 그런데 그 아들들의 이름을 레아가 짓는데요, 그 아들들의 이름을 보면 모두 남편에 대한 집착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아들 르우벤입니다. 이 뜻은 아들을 보라 라는 뜻입니다. 여보 이 아들을 봐요 당신 아들예요, 내가 낳았어요. 둘째는 시므온인데 뜻은 들으심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괴로운 마음을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레아는 남편이 자기에게로 오지 않는 것에 큰 괴로움을 가졌던 것이죠.

셋째는 레위 레위는 연합한다 라는 의미인데, 이제 나의 남편이 나와 연합할 것이라는 의미이죠. 넷째는 유다입니다. 유다는 또 자녀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뜻이죠. 유다를 낳고 레아의 출산이 멈춥니다.

나중에 아들을 두 명 더 낳는데, 하나는 잇사갈인데 이는 값을 주셨다는 뜻인데, 합환채를 라헬에게 팔고 남편과 동침함으로 얻은 아들입니다. 그리고 스불론이라는 아들을 낳는데, 그 뜻은 거한다 라는 뜻으로 이제 남편이 나와 함께 살리라 그런 뜻입니다.

이렇게 레아는 남편을 자기 것으로 삼기 위해 엄청난 집착을 보이지만 그러나 결국 남편은 레아 곁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리고 라헬은 자식에 대해 집착합니다. 왜냐하면 라헬은 아기가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라헬은 자신에게 아기가 생기지 않는 것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래서 301절을 보시면

30:1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라헬이 아기에게 집착하는 것은 내가 지금 불행한 것은 아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나에게 아기가 생기면 나는 행복해 질거야, 그러나 라헬에게 아기가 생기지만 그러나 라헬은 그 아기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자기가 아기를 갖지 못하자 자기 몸종인 빌하를 남편에게 들여보내서 아기를 낳게하여 그 아들들을 자기 자식으로 삼습니다. 첫째는 단이라고 억울함을 푸심이라하고 둘째 납달리라고 하는데 경쟁함이라는 뜻인데 내가 언니와의 경쟁에서 이겼다고 해서 납달리라고 짓습니다. 그러나 라헬의 마음속에 만족이 없습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라헬을 생각하심으로 10년 정도 지난 후에 아기를 갖게 하십니다. 그 아기가 바로 요셉입니다. 그런데 요셉의 이름은 더함이라는 뜻으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라는 뜻입니다. 요셉을 가졌으면 만족해야 하는데 만족하지 못하고 또 더 다른 아들을 더해달라는 것이죠. 그래서 나중에 한 15,6년 흐른 후에 아마도 라헬이 나이가 50이 넘었을 것인데, 그 때 라헬이 임신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라헬은 그 아기를 해산하다가 그만 죽죠. 죽으면서 그 아기의 이름을 베노니라고 부르는데요 그 뜻은 고통, 슬픔이라는 뜻입니다. 라헬은 결국 마지막에 그렇게 원하던 아들 하나를 더 얻었지만 그 아들로 말미암아 숨을 거두고 아들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죽습니다.

여러분 지금 나에게 없는 것에 집착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지금 있는 것으로 기뻐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레아는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해서 마음이 아프지만 그러나 남편에게 집착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얼마든지 감사와 기쁨의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라헬은 비록 아기를 낳지 못해서 아쉬움이 있지만, 그 아기에게 집착하지 않았더라면 자기를 사랑하는 남편과 정말 행복하고 감사하며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그렇게 고백합니다.

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4: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어떻게 사도바울은 어떤 형편에서도 만족하는 하는 것일 까요? 그의 만족의 비결은 무엇일 까요? 예 그것은 나에게 없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나에게 항상 있는 것으로 감사하고 기뻐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에게 항상 있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이셨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떠나가고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다고 해도 예수그리스도는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떠나지 않으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실 예수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는 것입니다. 2:3 그 안에는 지혜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지금 내손에 없는 것에 집착하지 마시고 지금 나와 함께 하시고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형편과 사정을 너무도 잘알고 계시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으로 충분한 사람은 진정한 승리자인줄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진정한 승리자가 되려면 경쟁심을 버려야 합니다. 상대방을 내가 이겨야 내가 승리한다라는 경쟁심은 결국 우리를 실패의 인생을 걷게 합니다.

레아가 남편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자 하나님이 레아를 위로하기 위해서 아들을 4명씩이나 주십니다. 그 아들들 이름은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입니다.

르우벤, 남편이여 이 아들을 보시오, 시므온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고통의 소리를 들으심, 레위, 이제 남편이 나와 연합하리라, 모두 남편에게 집착하여 레아의 마음이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레아가 유다를 낳았을 때, 남편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레아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라는 의미로 유다라는 이름을 지은 것이죠. 이 때 레아는 남편으로부터 받는 고통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을 바라보므로 기쁨을 회복한 것이죠.

그런데 아기를 낳지 못하던 동생 라헬이 자기 시녀인 빌하를 남편에게 들여보내어 아기를 낳게 하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보고 레아의 마음 속에 경쟁심이 발동하는데요, 이 때부터 레아의 마음에 기쁨과 평강은 사라집니다. 그리고 동생에게 이겨야 겠다는 경쟁심에 불타서 자기 시녀를 남편에게 들여보냅니다. 여러분 레아가 뭐가 부족하다고 하나님이 건강한 아들 4명씩이나 주셨는데, 왜 다른 여자를 남편에게 들여보내어 아들을 낳게 하려는 것입니까? 이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것이죠. 레아가 왜 이렇게 어리석게 된 것입니까? 예 경쟁심에 사로 잡혔기 때문입니다. 경쟁심에 불타니까 그 삶에 평강이 사라집니다. 늘 긴장하고 상대방이 나보다 더 잘하면 어떡하지 라는 불안감속에 살게 됩니다.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가난한 심령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경쟁심은 상대방을 누르고 내가 이기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닙니다. 경쟁심은 상대방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끊임없이 나의 욕심을 부채질하고 나를 높이려는 마음을 강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경쟁심은 끊임없이 나의 마음을 비우지 못하게 하고 더 좋은 것으로 더 많이 채우라고 말합니다. 그래야 네가 이긴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거의 대부분이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경쟁구도입니다. 내가 상대방을 누르지 못하면 나는 죽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죽기 살기로 경쟁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은 승자나 패자나 진정한 승리자가 결코 될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알드라구요, 세상에 영원한 승리자는 없다고요, 그렇습니다. 모두가 다 언젠가는 승리의 자리에게 내려와야 할 때가 오는 것이죠.

라헬과 레아도 그렇게 머리터져라 경쟁하고 싸우지만 결국은 아무도 승리자가 아닙니다.

라헬은 아기를 낳다고 죽고 레아는 죽을 때까지 남편을 차지하지 못합니다. 경쟁심을 갖고 서로 자기가 이기려고 뛰는 것은 결국 자기 인생을 실패의 길을 걷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진정한 승자, 영원한 승자가 되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과감하게 경쟁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높이려고 뛰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뛰고 나의 이웃을 유익을 위하여 뛰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고 공부하는 것은 상대방을 누루기 위해서, 나의 유익을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나의 이웃을 위해서인 것이죠.

그럼 그 사람은 모든 경쟁에서 자유를 얻게 됩니다.

상대방이 잘하면 진심으로 그것을 축하해주고 그가 더 잘 할 수 있도록 축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상대방이 나보다 못하면 상대방이 더 잘 할 수 있도록 상대방을 힘껏 돕고 붙잡아 주고 기도해주는 것이죠.

이런 모습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궁극적인 승리자는 누구 밖에 없다구요? 예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요, 그 사람은 반드시 승리합니다. 왜요? 하나님이 승리케 하시기 때문이죠.

모든 경쟁심을 버리시고 오직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없는 것 따위에 집착하지 말고 나와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 한분만을 바라보고 만족하고 감사하는 승리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