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믿음이 너를 구원한다
삶에서 내 뜻대로 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싶지 않은데도 떠지고 밥을 먹기 싫어도 먹어야 됩니다. 일하기 싫지만 해야 됩니다. 또 일을 하고 싶어도 일거리가 없어서 못하기도 합니다. 공부하기 싫어도 해야되고, 공부 잘하고 싶지만 잘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지만 할 수 없고, 돈을 많이 벌고 싶지만 벌지 못하고 술을 끊고 싶지만 끊을 수 없고 건강하고 싶은데 병이 찾아오고 오래 살고 싶은데 죽음이 찾아옵니다.
인생은요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누구 뜻대로만 되는 것일까요? 예 하나님이죠.
인생은 인생을 창조하신 하나님 뜻대로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자기 뜻대로 안 되는 삶을 사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 사람은 앞을 볼 수 없는 맹인 거지 바디매오입니다. 바디매오는 거지로 살기 싫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앞을 보기를 원했지만 볼 수 없었습니다. 매일 매일 구걸해야 하고 앞을 볼 수 없는 것은 바디매오의 뜻이 아니었지만 그는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의 힘으로는 불행한 현실을 바꿀 수 없는 것이죠.
여러분의 인생은 어떤지요? 여러분의 불행한 인생을 여러분의 힘으로 바꿀 수 있나요? 없습니다. 우리는 내 뜻대로 안 되는 이 불행한 인생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나의 인생을 부족함이 없는 행복한 인생으로 바꾸실 수 있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누구일까요? 예 예수님입니다.
어떤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도요, 예수님을 만나면 행복한 삶으로 바뀝니다. 왜 예수님을 만나면 불행한 인생이 행복한 인생으로 바뀌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은 불행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예수님을 만난 후부터 항상 기뻐하며 어떤 형편에든지 만족한다고 고백합니다.
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는 예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예수님 안에서 나는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당시 최고의 성공 가도를 달리던 앨리트 중에 앨리트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기 전 그의 삶에는 만족이 없는 불행한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난 뒤부터 항상 만족하는 기뻐하는 삶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바울의 고백은 바울만의 고백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사람의 공통된 고백이라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양이 목자를 만나면 모든 것이 다 채워지듯이, 예수님을 만나면 부족함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도 예수님을 만나셔서 불행한 인생이 행복한 인생으로 바뀌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만나서 행복한 인생으로 바뀔 수 있을까요?
예수님만이 나의 불행한 인생을 행복한 인생으로 바꾸실 수 있는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불행한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만나서 행복한 바디매오로 바뀔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그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눈을 뜨게 해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믿음이 바디매오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46절에 보시면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만나는 때가 언제냐면 예수님이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님이 여리고 성에 얼마 동안 계셨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잠시 지나쳐 가는 정도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수많은 기적을 일으키신 예수님의 소문이 이스라엘 전역에 퍼져서 예수님이 여리고에 오셨을 때여리고 성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리고 성에 들어가실 때는 맹인인 바디매오는 누구인지도 잘 모르고 그냥 많은 사람들이 성으로 들어가는구나 그 정도로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예수님이 오셨음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바디메오도 예수님이란 분이 수많은 기적을 일으킨다는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이심을 확신하였고 또 예수님이 자기의 눈도 뜨게 하실 수 있는 분임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원했는데, 그 예수님이 드디어 여리고 성에 오셨다는 것이죠. 아마도 바디매오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성문에서 구걸을 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바디메오는 성문에서 구걸을 하면서 예수님이 성문으로 나가실 때를 기다리고 기다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가실 때 꼭 예수님을 만나야지 하고 마음에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던 것이죠.
드디어 많은 무리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이다 하고 달려가는 소리도 들렸을 것입니다. 드디어 예수님이 무리들과 함께 바디메오 앞을 지나가는 것입니다. 바디메오는 볼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언제 지나가시나 하고 최대한 귀를 기울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어떤 사람이 ‘나사렛 예수시다“ 라고 말합니다. 바디메오는 그 소리를 듣고 그 즉시 큰 소리로 예수님을 부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바디메오가 얼마나 소리를 크게 질렀는지, 많은 무리로 그곳은 소란스러웠을 것인데, 바디매오의 외치는 소리가 제일 크게 들렸던 모양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디매오의 소리를 듣고 ”잠잠하라“하고 바디매오를 꾸짖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바디매오가 예수님에게 돈을 구걸하기 위해 소리치는 줄을 알고 바디매오를 꾸짖고 조용히 시키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바디매오는 더욱 크게 소리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바디매오의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무리에게 둘러싸인 예수님이 그 소리를 듣고 멈추어 서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바디매오를 부르십니다.
사람들이 바디매오에게 ”안심하고 일어나라 예수님이 너를 부르신다“ 하자 맹인인 바디매오는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맹인은 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앞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뛰다가 넘어지기가 쉬운 것이죠. 그런데 맹인 바디매오가 뛰었다는 것이죠. 그것도 자기의 소중한 겉옷을 내버리고 예수님에게 뛰어갔다는 것은 그가 몹시 흥분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 바디매오는 이런 흥분된 모습으로 예수님에게 달려가는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은 나의 눈을 뜨게 해줄 수 있다고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이 자기를 부른다는 소리를 듣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에게 달려갔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디매오에게 묻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그때 예수님이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자 곧 보게 되어서 예수님을 따릅니다.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만나서 눈이 떠지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은 바디매오에게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불행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 보낸 메시야라는 믿음입니다. 만약 이런 믿음이 없었다면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여리고에 오셨다는 소식을 들었어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냥 평소때 처럼 성문에서 구걸을 하고 예수님이 자기 앞을 지나가도 소리지르지도 않고 계속 구걸이나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바디매오를 그냥 지나쳐 가셨을 것입니다. 그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겠죠. 그러나 바디매오가 믿음을 가지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부르짖었기에 예수님을 만남으로 볼 수 없던 눈이 볼 수 있는 눈으로 바뀌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불행한 인생을 행복한 인생으로 바꾸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우리의 메시야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바디매오와 같은 불행한 인생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영적 맹인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왜 사는지,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지금 내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그냥 순간 순간의 정욕을 따라 살아가는 죄인입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만물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한 채, 평생 욕심을 따라 살다가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는 인생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불행한 삶에서 우리를 건저 주시는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면 우리를 괴롭게 하는 모든 문제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바디매오의 불행을 해결하여 주신 예수님이 여러분의 불행도 다 해결해 주십니다.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의 이 고백이 바로 나의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감옥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보내어 묻게 합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이 말은 당신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진짜 메시야 맞습니까? 라는 질문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세례요한의 제자들에게 너희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라 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마11: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6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불행에 빠진 모든 인생을 구원하는 참 메시야라는 것입니다. 나를 끝까지 믿는 자는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불행 가운데 있습니까? 어떤 문제가 여러분을 괴롭게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예수님께 그 문제를 가지고 나와 부르짖으십시오.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나를 이 불행에서 건져주세요“ 여러분이 예수님이 나를 구원할 메시야이심을 믿고 부르짖는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예수님을 만날 것이고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의 눈먼 눈은 떠질 것이고 여러분의 불행은 행복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만나려고 큰 소리로 예수님께 부르짖었을 때, 그것을 꾸짖고 예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려고 부르짖을 때,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탄입니다. 사탄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면 사탄이 우리를 지배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늘 우리를 낙심에 빠지게 하려고 합니다. ”너는 안돼, 너는 못해, 너는 죄인야, 사람들이 너를 싫어해, 하나님이 너를 버렸어, 기도해도 소용없어, 기도한다고 바뀌지 않아“ 또 반대로 일이 잘될 때는 교만하게 해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게 합니다.
여러분 이런 사탄의 속임에 절대로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기도하면 언제든지 우리의 기도를 들어줄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14:14 에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사탄이 너는 안돼, 너는 할 수 없어, 기도해도 소용없어 라고 할 때 사탄아 물러가라 예수님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기도하면 응답하신다고 약속하셨다 하고 더욱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그럼 사탄이 떠나가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사람들이 소리치는 바디매오를 꾸짖으며 ”잠잠하라“ 하였지만 바디매오는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부르짖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바디매오가 더욱 큰 소리로 부르짖은 것은 예수님만이 나를 구원하실 수 있는 구원자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지금 예수님을 놓치면 나는 평생 눈을 뜰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을 가지고 예수님을 간절히 붙잡으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처음에 바디매오가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소리 질렀을 때 예수님이 듣지 못했을까요? 아뇨 예수님은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바디매오의 소리를 분명히 듣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첫 번째 부르짖을 때 응답하지 않으시고 그냥 지나가셨을 까요? 그것은 바디매오가 사람들의 방해에 굴하지 않고 예수님께 계속 부르짖는 분명한 믿음을 갖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가 한 번 기도하고 ”어 안 이루어지네“ 하고 기도를 포기하는 자가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나를 불행에서 구원하시는 유일한 구원자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끝까지 부르짖고 기도하는 것이죠.
예수님은 우리가 계속해서 끝까지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예수님이 눅18:1부터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한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한 과부가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합니다. 그러나 처음에 재판관은 과부를 무시하고 과부의 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과부가 찾아와 원한을 풀어달라고 탄원을 하자 재판관이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며 과부의 원한을 풀어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이런 비유를 하신 것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한 번 기도하고 ”어 안되네“ 하고 포기하는 실패자가 되지 마시고 계속해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가장 적합한 때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능력을 부어주셔서 불행을 물리치고 승리하게 하실 줄을 믿습니다. 그런 여러분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실 것입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 순간 우리의 불행은 떠나가고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기뻐하며 승리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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