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더욱 힘쓰라
음란을 멀리하라 –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아내를 대하기 – 형제를 해롭게 하지 말기
자기 일하기를 조용히 힘쓰라
외인들에게 덕을 세우라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겉사람은 늙습니다. 주름도 생기고 아픈데도 많아지고 몸이 약해지죠. 다른 말로 하면 낡아지는 것입니다. 겉사람이 낡아지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운동이나 좋은 음식으로 낡아지는 속도는 조금 늦출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계속 낡아질 뿐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죽어서 썩어지죠. 그래서 겉사람에 소망을 두는 사람은 결국 낙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겉사람이 낡아져도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도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속사람이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속사람이 새로워진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자라가는 것입니다. 믿음이 자라가면 갈수록 성도는 썩어질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 영광만을 위하게 되는 것이죠.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이 자라가면서 자기가 전에 추구하던 세상의 부귀를 이제는 해로 여긴다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즉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가장 고상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면 더 이상 예수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기에 바울은 이제 세상의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긴다고 고백합니다. 이렇게 믿음이 자라가면 세상의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온 힘을 쏟게 됩니다. 이것이 속사람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기쁨이 될 때 우리는 참된 행복을 얻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의 존재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존재 목적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나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 때 우리는 나의 존재 가치를 최대로 발휘하게 되어 참된 만족과 행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성숙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꺼이 자기의 생명조차도 아끼지 않고 드립니다. 바울이 사도행전20:24에 고백하죠.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행전 20:24)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나의 생명조차도 아끼지 않고 기꺼이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고백처럼 30년 정도 복음을 전파하다가 붙잡혀 로마 감옥에서 참수형을 당해 죽습니다. 그가 사형을 당하기 직전에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를 써 보냈는데, 그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바울은 자기가 죽은 후에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을 예비해 놓고 계심을 고백하며 하나님을 위해서 죽는 것을 영광스럽게 여긴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바울처럼 믿음이 자라가서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도의 믿음의 성숙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이만하면 되었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만하며 되었어 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사람은 믿음의 길에서 이탈하여서 교만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빌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한 일은 잊어버리고 하늘의 푯대를 향해서 계속 달려가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 1절에 보시면 더욱 많이 힘쓰라 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1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더욱 많이 힘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자기의 기쁨을 위해 사는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에 온 힘을 쏟는 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기쁨이 될 때, 하나님의 위로가 우리에게 부어져 우리 안에 세상이 알 수 없는 기쁨이 넘쳐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에 계속 더욱 많이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복된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요? 따라 해봅시다.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3절 같이 읽겠습니다.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음란을 버리는 거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음란을 버리는 것이 거룩의 전부는 아니지만 당시 음행이 성행하였던 상황에서 음란을 버리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 음란을 버리는 거룩의 행위로써 자기 아내를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대할 것을 말씀합니다. 4절에 나와 있죠.
4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자기 아내를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대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자기 아내를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대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부부간에 올바른 성관계를 말합니다. 5절 말씀을 보면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색욕이라는 말은 충동적인 정욕을 말합니다. 아내를 충동적인 정욕으로 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내를 충동적인 정욕으로 대하는 것은 단지 자기의 성욕을 채우기 위한 대상으로 아내를 여기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거룩하지 못한 상태가 됩니다. 하나님께 기쁨이 되지 못하는 것이죠. 이런 색욕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이 하는 행동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이런 색욕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아내를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대해야 합니다. 즉 아내를 충동적인 정욕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까지 버리셨던 것처럼 오로지 아내를 위하는 사랑의 마음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아내를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대해갈 때 우리의 거룩함은 점점 더 강화됩니다.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의 사람으로 자라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아내와의 관계를 가질 때 자신의 성욕을 채우려는 이기적인 정욕을 삼가고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대하는 법을 알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인 음란을 버리라는 거룩을 이루어 가는데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아내를 호색 즉 단지 충동적인 정욕으로 대하는 자는 분수를 넘어서 다른 형제를 해하기 쉽습니다. 6절 같이 읽겠습니다.
6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언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라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라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예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죠.
출20: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아내를 충동적인 정욕으로 대하는 자는 분수를 넘어 이웃의 아내를 탐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아내를 그렇게 충동적인 정욕으로 대하였기 때문에 다른 이성에게도 그렇게 대하는 것이죠. 이것은 자기와 자기 가정을 깨뜨릴 뿐만 아니라 형제의 가정까지 파탄에 이르게 하는 큰 죄악입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한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거룩한 삶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함을 저버리는 사람은 사람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는 그런 정욕이 다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어서 절제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그런 죄의 유혹에 넘어가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12에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호색, 충동적인 정욕을 버리십시오. 그리고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아내를 대하려고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이 다른 이성을 성결한 마음으로 대하는 데 큰 유익을 줄 것입니다. 그래서 음란을 버리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게 할 것입니다. 음란을 버림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한 사람으로 자라가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은 어떤 것일까요? 자기 일에 조용히 힘쓰는 것입니다.
자기 일에 조용히 힘쓰는 이유는 첫째는 자기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둘째는 불신자들에게 존경함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함입니다. 11,12절 같이 읽겠습니다.
11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12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에서 특별히 조용히 라는 말을 넣은 것은 당시에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생각으로 자기 일을 하지 않고 소란을 피우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여집니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재림하는 종말의 날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번개가 번쩍임같이 갑자기 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언제 종말의 날이 올지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아실 뿐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가 예수님이 몇 년 몇 월 며칠에 오신다. 여기로 온다 저기로 온다 하며 자기 일은 하지 않고 소동을 피우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자기의 일을 성실히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24장40절에 예수님이 재림하셨을 때
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성도는 게으름과 나태해서는 안 됩니다. 묵묵히 성실히 자기 일을 하는 자여야 합니다. 자기 일에 집중하고 성실히 일하는 자는 조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 일에 참견하고 소란을 일으킬 여력이 없는 것이죠. 그렇게 자기 일을 성실히 하는 자는 생계에 곤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성실히 일함으로 인해 믿지 않는 불신자들 앞에서 단정히 행할 수 있습니다. 12절에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할 때 단정히는 ‘보기 좋은’ ‘존경할 만한’ 그런 뜻입니다. 믿는 성도들이 자기 일을 성실하게 함으로 불신자들에게 존경함을 받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것이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태복음 5:16]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거룩은 자기 일을 성실히 함으로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내일부터 일터에 나가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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