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를 귀히 여기라
처음에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몇 사람을 만들었을까요? 한 사람 만드셨습니다. 남자인 아담 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다른 짐승들은 하나님이 종류대로 한꺼번에 창조하십니다. 하나님이 하늘에는 새가 날으라 하니 하늘에 수많은 종류의 새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하니 수많은 종류의 물고기들이 물속에 생겨났고요. 그리고 여섯째 날에 땅은 짐승을 그 종류대로 내라 하니 땅 위에 수많은 종류의 짐승들이 한꺼번에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짐승을 창조하실 때는 암컷과 수컷을 한 번에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는 딱 한 사람, 남자인 아담만 창조하십니다. 그렇게 하신 것은 사람이 나뉘지 않고 서로 사랑하며 한 몸 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현재 이 세상에 70억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이 70억명의 사람이 결코 남남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한 혈통에서 나온 한 가족이고 더 나아가서 한 몸입니다. 원래 남남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죄가 들어오면서 한 몸 된 인간관계를 다 끊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서로 사랑하지 않고 관심도 없는 남남이고 더 나아가서 미워하고 싸우고 다투는 원수 관계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한 몸 공동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한 사람만 창조하신 것은 인간이 한 몸 공동체로서 서로 사랑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남자인 아담을 창조하시고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을 잠들게 하시고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십니다. 여자를 만드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기 위함이죠. 그러나 더 근본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돕기 위함입니다.
창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인 하와를 만드신 것은 아담을 돕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웃의 존재 이유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왜 나에게 이웃을 주신 것일까요? 예 나를 돕기 위함입니다. 이웃은 나를 돕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왜 나를 이 땅에 존재하게 하는 것일까요? 예 나의 이웃을 돕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서로 돕고 도움을 받으며 사는 존재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이웃을 돕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또 내 이웃이 존재하는 이유는 나를 돕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를 만나든지 “아 저 사람은 내가 도와야 할 사람이구나. 아 저 사람은 하나님이 나를 돕기 위해 붙여준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으로 대하면 내가 도울 일이 있을 때 힘껏 돕게 되고 또 그 이웃도 나를 힘껏 돕습니다.
그러나 이 원리가 이 세상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먼저 내 안에 나만을 위하는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죄의 본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나의 이웃도 나를 돕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자기만을 위하는 죄의 본능이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우리는 내 이웃이 나를 어떻게 대하든 나는 이웃을 사랑하고 돕는 일에 힘을 다해야 합니다. 또 내가 이웃의 도움을 받게 되었을 때는 감사함으로 받으면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렇게 이웃은 나에게 대단히 귀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이웃과 간단한 도움을 주고받는 정도로만 지내는 것만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이웃과 하나 되어 합력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담에게 하와라는 이웃을 주셔서 하나 되어 합력하게 하셨듯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웃을 주신 것은 하나 되어 합력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현실적으로 이웃과의 이런 합력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죄로 말미암아 관계가 나뉘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나의 이웃이 내가 이루려고 하는 것을 방해하고 심지어는 핍박자가 되어서 나의 길을 막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6:14] 에는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이웃이 빛과 어둠처럼 절대로 하나 될 수 없는 존재임을 말합니다.
그럼에도 오늘 본문은 하나보다는 둘이 나음을 말하면서 이웃과 긴밀히 합력할 것을 말합니다. 9절에 보시면
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혼자보다는 두 사람이 소통하고 힘을 합치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되어 좋은 상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10절에는 넘어지는 상황에서 옆에 이웃이 있으면 이웃이 붙들어주고 다시 일으켜주어 넘어지지 않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혼자면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어서 화를 당한다는 것입니다. 11절에서는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이 말씀은 이웃이 함께하면 서로의 체온으로 따뜻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이웃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가운데 고독과 외로움을 없애고 강건함을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12절은 대적과의 싸움입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이웃이 함께하면 대적과 싸움에서 더욱 강력하게 대항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한다는 것은 이웃들과 합력하면 결코 쉽게 패하지 않고 승리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웃과 긴밀한 협력을 이룰 때에 일어나는 효과들입니다. 이런 효과가 나타나려면 이웃이 나와 같은 마음과 같은 뜻 같은 비전을 가지고 달려가는 자 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이웃을 이 세상에서는 만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늘을 바라보고 달려가는데 세상에 속한 이웃은 땅만 바라보고 달려가는 것이죠.
그럼 어디에 가면 그런 이웃을 만날 수 있을까요? 예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이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된 공동체로써 한 몸입니다. 이들은 나와 같이 하늘에 속한 자들로써 저 하늘을 바라보고 달려 가는 자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속한 이웃은 나와 같은 마음, 같은 뜻, 같은 비전을 가지고 달려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 땅의 교회 성도들 간에 그렇게 긴밀한 협력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영적으로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한 몸이 되었지만 현실에서는 한 몸처럼 합력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육신 안에 죄성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는 하나님의 자녀들로 한 가족이고 한 몸이지만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냥 남남으로 지내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육적인 죄성을 극복하고 서로를 돕는 진정한 이웃이 될 수 있을까요?
따라 합시다.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자꾸 모여서 영적인 교제와 육적인 교제를 가져야 합니다. 초대 교회가 서로를 돕는 아름다운 이웃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모이기를 힘썼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모여서 기도하고 찬양하고 말씀 듣고 성찬식을 하며 영적인 교제를 하고 또 함께 떡을 떼며 육적인 교제를 한 것입니다.
행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행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교회는 영적으로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한 몸 된 공동체이지만 그러나 육적으로는 그대로 남남입니다. 이것을 극복하려면 친밀함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 친밀함이 형성되려면 자주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처럼 육적인 만남만으로는 안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 말씀과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의 교통함으로 온전한 하나됨을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매일 공적인 모임이 있습니다.
주일 오전 예배, 주일 저녁 예배,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매일 새벽기도회 여러분 모이기를 힘쓰십시오. 우리가 매 주일 오전 예배로 한 번 만나는 것도 교제가 되긴 하지만 주일 저녁예배 나와서 매주 두 번 만나면 두 배의 친밀함이 이루어지고 수요예배, 금요기도회까지 매주 모이면 더욱 큰 친밀함이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어려움이 있을 때 진심으로 서로 마음을 열고 문제 상의하며 서로 기도하며 돕는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과 같은 동역을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지혜가 부족하고 어려울 때 서로 상의하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좋은 상을 얻고, 넘어지려고 할 때 서로 붙들어주어 넘어지지 않고 다시 힘을 내어 전진하게 하고, 외로울 때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고, 힘을 합쳐서 대적을 물리치고 함께 승리하는 이웃이 되는 것이죠.
지금 여러분 옆에서 함께 예배하는 이웃은 하나님이 나를 돕기 위해서 붙여주신 이웃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는 옆에 있는 지체를 돕는 자의 사명이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이웃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자꾸 모여서 예배하며 교제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대적도 우리가 맞설 수 있고 패하지 않으며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독불장군식으로 혼자 싸우려는 자는 패할 것입니다.
[잠언 15:22]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무너지고 지략이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
12절 같이 읽겠습니다.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모이기를 힘씁시다. 그러면 우리는 서로를 진정으로 돕는 참된 이웃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윈 윈이라고 하죠. 서로 돕고 도움을 받으며 모두가 세상을 이겨나가는 우리 가평기쁨교회 식구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갈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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