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강의

<2020.2.16 오전예배설교> 믿음으로 축복하라 (창49장)

박선준목사 2020. 2. 18. 18:03


믿음으로 축복하라


본문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혈기는 축복을 막고 저주를 부른다.(르우벤, 시므온, 레위)

하나님을 믿고 사자같이 담대하라. (유다지파, 요셉지파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김)

주의 구원을 기다리라 사탄의 미혹에 빠져 죄로 망하게 하지만 메시야가 회복시키신다.()

  

보통 사람이 세상을 떠나갈 때 흩어져있는 자녀들을 불러 모으죠. 이제 마지막으로 자녀들 얼굴을 한 번 보고 할 말있으면 하고 떠나가려고 하는 것이죠. 죽을 때 마지막으로 남기는 유언은 보통 중요한 말이고 꼭 하고 싶은 말이죠.

오늘 본문에 야곱도 기력이 다하여 죽을 때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이제 자신이 죽을 때가 다 된 것을 알고 12명의 아들들을 불러 모읍니다. 야곱이 12명의 아들들을 모이라고 한 것은 마지막으로 그들을 축복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 야곱의 축복은 자기 마음대로 하는 축복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서 하는 예언적 축복입니다.

49:1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야곱이 마지막 유언으로 후일에 12아들들이 어떻게 될 것을 예언한다는 것입니다. 이 야곱의 예언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감동으로 야곱이 예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야곱의 이 예언은 그대로 성취가 됩니다.

이 야곱의 12아들들은 나중에 12지파가 되어서 이스라엘민족을 이루게 됩니다. 이스라엘민족을 이루면서 야곱이 12아들들에게 한 축복들이 하나씩 하나씩 다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야곱이 이런 예언적 축복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야곱은 큰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쌍둥이 형 에서가 있었죠. 그러나 형 에서는 믿음이 없어서 장자의 축복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므로, 동생인 야곱에게 장자권을 빼앗기고 맙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도 에서는 받지 못하고 믿음의 야곱이 축복을 다 받지요. 야곱은 부족한 것이 많았던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믿음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함으로 축복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147년의 생애를 살면서 야곱은 점점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믿음의 야곱위에 임하셔서 야곱으로 하여금 12아들들을 축복하게 하시고 그 아들들을 통하여 이스라엘민족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도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여러분이 인생을 마쳐질 때, 하나님의 감동 가운데 여러분의 자녀손들을 축복하면서 세상을 떠나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빌어주면 자녀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나도 우리 아버지처럼 믿음으로 살아야지 하며 그 믿음의 계보들을 이어가지 않겠습니다. 나의 집안이 믿음의 명문가문이 되는 것은 엄청난 축복인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이것은 믿음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평소에 늘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으로 충만했던 사람만이 마지막 숨을 쉴 때,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할 수 있는 것이죠. 평소에 믿음으로 살지 않은 사람은 마지막때에는 더더욱 축복기도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야곱과 같이 믿음의 사람이 되셔서 여러분의 자녀 손들을 마음껏 축복하는 축복의 사람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야곱이 12아들들을 축복하는데요, 여기서 몇 가지 교훈을 얻기를 원합니다.

먼저는 축복이 저주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세상을 떠나가면서 아들들을 축복하려고 불러 모았는데, 그 입에서 축복이 안나오고 도리어 저주가 나오는 것입니다.

야곱에게 저주를 받은 아들들은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 이 세아들들입니다.

르우벤, 시므온, 레위는 왜 축복이 아닌 저주를 받게 되었을 까요? 그것은 이들이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혈기를 따랐기 때문입니다.

먼저 르우벤은 야곱의 큰 아들인데, 이 르우벤이 그만 음욕의 충동을 절제하지 못하고 아버지 의 아내 빌하하고 동침을 합니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야곱에게 알려주었지만, 야곱은 가정의 화목을 지키기 위해 이 일을 그냥 덮고 지나갑니다. 그런데 야곱이 죽을 때가 되어 유언을 하는데, 야곱이 이 일을 기억하며 르우벤을 저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49:3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49:4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르우벤은 장자로써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였는데, 그러나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히는 죄를 범하므로 그는 탁월하지 못하고 장자의 복을 받지 못하고 도리어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예언대로 르우벤 자손들 가운데 탁월한 자가 나오지 못합니다. 이처럼 정욕을 제어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무너뜨릴 때 축복이 막히고 저주가 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시므온과 레위는 첫째아들 르우벤의 바로 밑 동생으로 둘째와 셋째입니다. 르우벤이 범죄함으로 장자의 축복을 받지 못함으로 그 축복이 이제 둘째나 셋째인 시므온과 레위에게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도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혈기를 부림으로 장자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도리어 저주를 받습니다.

이들의 여동생 디나가 있었는데, 이 디나가 세겜마을에 구경같다가 세겜 추장에게 겁탈을 당하게 됩니다. 추장은 디나를 잊지못하고 자기 아내로 달라고 하는데, 디나를 주는 조건으로 세겜 모든 남자들은 할레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세겜남자들이 할레를 받고 몹시 아파서 누워있는데, 이 시므온과 레위가 복수한다고 칼을 가지고 가서 누워있는 세겜남자들을 모조리 죽여 버립니다.

이들을 향해서 야곱은 6절에 그렇게 예언합니다.

49:6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임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했는데 이것은 야곱 자신은 세겜을 죽이는 일에 개입되지 않았음을 거듭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들고 가서 세겜남자들을 쳐 죽인 것은 아버지인 야곱에게 상의 한마디도 없이 자기 혈기로 가서 죽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권위를 철저히 무시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권위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 그 노여움이 혹독하다 했습니다.

49:7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이들은 동생을 위해 복수한 것이라고 변명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무시하고 혈기를 따른 것으로 결코 하나님께 영광이 될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이들은 야곱에게 축복을 받지 못하고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야곱의 저주대로 시므온은 자기 땅을 제대로 차지 하지 못하고 유다지파에 얹혀사는 꼴이되고 나중에는 북이스라엘로 넘어가 나뉘어져 버리립니다. 또 레위도 분깃을 받지 못하고 이스라엘 중에 흩어져 버립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우리 안에 정욕이나 혈기를 따를 때 그것이 축복의 통로를 막고 도리어 저주를 불러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본문을 통해 얻는 교훈은 하나님을 믿고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담대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오늘 야곱이 유다를 축복하는데요, 그런데 야곱이 유다를 향해서 너는 사자같을 것이라고 축복합니다.

49: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유다는 새끼사자이다 했는데 새끼 사자는 아기사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냥을 할 수 있는 젊은 사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는 적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맹이 넘치는 사자입니다. 그리고 엎드려 움크리고 있는 수사자와 같다 했습니다. 수사자가 움크림은 먹이를 사냥하는 모습은 유다가 강한 힘과 지혜를 가진 것을 의미하고, 또 암사자로 비유하는데 이는 새끼를 보호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음으로, 자기 새끼를 건드리는 대적은 어느누구도 가만 놔두지 않고 목숨 걸고 싸우는 것입니다. 이는 자기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유다를 말하는 것입니다.

유다는 야곱의 축복처럼 사자와 같이 용맹스럽고 강한 지파가 됩니다. 8절에 보시면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했습니다. 목을 잡는 것은 적을 완전히 제압하는 것이죠.

그리고 유다가 다른 지파들의 우두머리가 될 것을 예언합니다. 8절 끝에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10절에도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그러니까 유다지파가 왕이 된다는 축복이죠. 이 축복은 800 ,900년 후에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유다지파에서 다윗왕이 나오게 되죠. 원수의 목을 잡고 사자와 같이 적을 쳐부수고 다른 형제들이 절을 하고 모든 백성이 복종할 것이라는 모든 축복이 성취가 됩니다. 그리고 더나아가서 10절에 보시면 실로가 오기까지 유다의 통치가 계속된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49:10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유다의 통치가 실로가 오시기까지 계속된다는 것인데, 그러니까 실로가 오실 때 유다의 통치가 끝나버린다는 것입니다. 사실 유다의 통치는 bc586년에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함으로 끝이 나버리는데, 그러나 유다의 통치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실로가 와서 그 왕권을 회복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실로는 바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회복의 존재인데 이 실로는 메시야이신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메시야인 그리스도는 바로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이시죠. 그런데 야곱은 이 실로 즉 메시야의 통치를 예언하는데 이 메시야의 통치는 이스라엘민족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0절 끝에 보시면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했습니다. 여기서 모든 백성은 이스라엘백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인류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메시야의 통치는 전 우주적인 통치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11절 서부터 보시면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합니다. 그리고 12절은 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 합니다. 왜 갑자기 야곱은 이런 예언을 하는 것일 까요?

이것은 메시야가 와서 통치하게 될 때에 온 세상에 임할 평화와 풍요로움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나귀는 평화의 상징이고 포도나무와 우유는 풍성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풍성함이 얼마나 넘쳐나면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고 포도주를 실컷 마실 뿐아니라 옷을 포도주와 포도즙에 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언이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첫기적을 행할 실 때 부분적으로 이루어지죠. 결혼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예수님이 돌항아리 여섯에다가 물을 가득히 부으라 명하시고 그것을 떠다 연회장에 갖다 주라고 합니다. 그 때 그 물이 포도주로 바뀌어 버리죠. 이와같이 메시야는 물을 포도주를 바꾸시는 회복의 왕이시고 풍요의 왕이신 것이죠. 이 야곱의 축복은 종국에 저 천국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55: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이 축복은 유다에게 부어진 축복입니다. 그런데 유다는 사자와 같이 용맹스러웠다는 것입니다. 이 용맹스러움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는 믿음에서 나온 용맹스러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시고 염려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담대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십시오. 그럼 여러분에게도 유다와 같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는 복된 자들이 될 줄을 믿습니다.

 

그리고 본문을 통해서 얻는 또 한가지 교훈은 하나님의 백성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단을 축복하는데요, 16절은 단이 백성을 심판할 것을 말하고 17절에 보시면 단은 독사와 같다고 합니다.

49:17 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단은 작지만 독사와 같은 강력한 독이 있어서 크고 강력한 침략자에 맞서 용맹하게 싸우고 그의 말탄 자를 떨어뜨리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예언대로 단은 그런 역사를 이루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단 지파는 사사시대에 우상숭배의 소굴이 됩니다. 그래서 이 단의 우상숭배가 원흉이 되어 이스라엘이 전체가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고 결국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런 결과론적으로 볼 때 이 단을 이스라엘을 무너뜨리는 적그리스도로 보기도 합니다. 요한계시록에7장에 보시면 사도요한이 구원 받은 자를 말하는데, 이 구원의 반열에서 이스라엘의 12지파중에 단지파가 빠져있습니다. 이것을 보고 이 단지파에서 적그리스도가 나오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어쨌든 그래서 오늘 본문 17절의 예언을 단에 의해서 이스라엘이 멸망에 이르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예언처럼 여러분 이 세상 마지막때가 되면 적그리스도가 반드시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 적그리스도는 이 세상을 지배하는 강력한 권세를 가진자로써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아주 심파게 핍박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거의 죽은 자처럼 박해를 당하게 됩니다.

마치 독사가 말굽을 물어서 말 탈자를 떨어뜨리듯이 그렇게 사탄이 교회를 쓰러뜨릴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렇더라도 교회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다시 일어나고 적그리스도는 멸망하고 말것입니다.

야곱은 이 사실을 염두해둔 것인지 모르지만 17절에 단의 예언을 한후에 18절에 이런 독백을 합니다. 49:18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 어떤 핍박과 환난이 오더라도 믿음을 져버리면 안됩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목숨을 빼앗긴다고 해도 배도의 길을 가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교회를 승리케 하실 것입니다.

야곱이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하였던 것처럼 주님의 구원을 기다리면 끝까지 인내해야 합니다.